얼마 전

미국에서 국군 전사자의 유해 12구가 돌아왔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6.25전쟁 당시 북한지역 전투에서 전사한 국군의 유해로, 

북한에서 미군의 유해를 발굴하던 미국에 의해 발굴되었다가,

후에 국군의 유해로 확인되어

 

62년이라는 긴 세월과 멀고 먼 길을 돌아 고국으로 온 것입니다.

 

 

북한지역에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 12구가 6.25전쟁 발발 62년만에 25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이명박 대통령과 군 관계자,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헌봉송단에 의해 운구되고 있다.

 

 

 

북한지역에서 전사한 국군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비록

우리가 갈 수 없는 북한 땅이었기에 미군에 의해 발굴되었지만,

남한 지역에서의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은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나라를 위해 희생된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적 사명감으로  

지난 2000년부터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많이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사자 유해발굴과 신원확인을 위한 국가적인 시스템을 갖추고있는 나라가

미국과 우리나라 정도 뿐이라니,

 

한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얼마전에는 그동안 축적한 경험과 기술을

내전으로 인한 실종자 발굴과 신원확인을 추진하고 있는 리비아에 전수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6천여구가 넘는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지만,

 

아직도 찾지 못한 유해가 

남한 전역에만 13천여구에 달할 것이라 추정되어

발굴 작업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유해 발굴 작업은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국군의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조국을 위한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가장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는 현장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많이 찾는 안보체험 교육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유해발굴현장 참여 신청은 국군유해발굴감식단 홈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특히 젊은 대학생들의 참여도 많은데,

얼마전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유해발굴 현장을 찾았습니다.

 

바로

6.25전쟁에 참전하거나 지원했던 국가에서 유학 온 대학생들이었는데요,

15개국의 유학생 60명이 국내 대학생 30명과 함께 유해발굴 현장을 찾았습니다.

 

 

 

이들이 찾아간 곳은

강원도 양구군의 수리봉 일대,

 

 

 

 

6.25전쟁 당시 ‘피의능선’으로 불릴 만큼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수 많은 전사자가 생긴 지역입니다.

 

 

유해발굴 현장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무더위 속에서 2시간 가량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쉽지 않은 산행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모두들 힘차게!! 출발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기념 사진도 찍으며 여유를 부려보지만,,)

 

 

(얼마 못 가 대열이 흩어지고, 각자 알아서~ 정상까지..  나 홀로 산행으로 변합니다..)

 

 

그래도 한명의 포기자도 없이 정상에 도착해 보니

 

동서남북 모두 첩첩 산중으로 둘러쌓인 적막강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기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 너머에 휴전선이 있다고합니다..)

 

 

잠시 숨을 돌리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고 있자니,

,

60여년 전 이 깊은 산중에서 

포성과 총탄이 오가는 처절한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는데요,

 

 

이곳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는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으로부터

 

당시의 전투 상황과 유해발굴 절차,

 

 

 

 

 

 

 그리고

이곳에서 발굴된 전쟁 유품들을 보면서는

 모두들 이내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투 상황과 유해발굴 작업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을 듣고,

 

다시 능선을 따라,

실제 유해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쌓인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오르내리다 보니

 

 

갑자기 시야가 넓게 트이고,

 

유해발굴 작업에 열심인 우리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요

 

 

 

 

이  험준한 산 속에서

일일히 손으로 발굴 작업을 하고 있는 우리 병사들이 얼마나 힘들지 안쓰럽기도 하고,

또 

어떻게 이 깊은 산속까지 찾아와 유해를 발굴하고 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는데요

 

 유해 소재지는

전사(戰史)나 현지 주민 또는 참전용사의 제보ㆍ증언에 의존해 유해 소재를 찾아낸다고 하더군요..

( 전사자 관련 자료가 부족해 많은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 곳 현장은

일주일 전부터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된 곳으로

곳곳에서 유골과 탄통, 수저 등 전쟁 유품이 조금씩 그 형체를 드러내 보이며

 

 

 

 

 

(유해들은 제대로 매장된 것이 아니라 참호 등 전투 현장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세월이 흐르며 퇴적되어 묻혀 버렸기 때문에 발굴 작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60년전 이곳이

진짜 전쟁터 였음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이미 앞에서 전시되어 있던 전쟁 유퓸을 보기는 했지만,

 

실제 땅속에 묻혀있는 유해와 유품들을  보니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더욱더 생생하게 가슴에 와닿았는데요,

 

 

 

 

참가 학생들 눈에도 조금은 충격적인 모습인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 대한민국의 지금의 모습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몰라보게 발전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하지만

지난 6.25 전쟁은 역사 속에 있는,

그것도 나와는 상관 없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 정도로만 알고있었는데..

 

 전쟁의 상처를 달래기 위한 작업이

오늘도 이 땅 어디에선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또 내가 공부하기 위해 찾아온 이 나라의 자유와 발전된 모습에 

내 나라의 할아버지, 아버지의 희생이 서려있다는데 대해

깊은 자부심과 우정을 느끼게 되었다."며 

 

입을 모았는데요

 

산에서 내려올 때는

힘들지만,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올랐던 그 길을

가슴 속에 한가지씩 담고도, 힘든 줄 모르고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유학생들과 함께하면서

이 땅의 자유수호를 위해 국가적인 지원과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여러 나라들에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전 국토가 전쟁터 였다'는 유해발굴 감식단의 설명이 떠올라

차 창 밖으로 무심코 지나치는

녹음 짙은 산이 웬지 다르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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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S 2012.06.18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 분들이 계셨기에 우리의 오늘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Makri 부대에 대해서도 한번 다뤄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kind=&ask_time=&search_table_name=&table=bestofbest&no=74610&page=3&keyfield=&keyword=&mn=&nk=B.O.B&ouscrap_keyword=&ouscrap_no=&s_no=74610&member_k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