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서사 /남사군도/미스치프 암초 접수 작전 - 2 편-

 

 

 

중국군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지만 월남 함대는 중국 함대에게 계속 도전했다. 

 

10:24분. 월남의 두 호위 구축함 HQ-16과 HQ-10이 중국 함대에게 포문을 열었다.

 

 

                                                                              호위 구축함

 

 

월남의 다른 호위 구축함 두 척들도 이 포전(砲戰)에 합류하였고 해전은 40분이나 계속되었다.

양측의 해군함들은 치고 박고하는 동안 쌍방 함들에 사상자가 다량 발생했다.

 

선체가 작은 중국 군함들은 상대적으로 큰 베트남 함의 주포 사각(死角) 안으로 육박 공격하여 네 척의 월남 해군함 4척을 대파시켰다.

 

특히 월남 해군의 초계함 HQ-10함이 큰 파손을 입었는데 이 함은 엔진 한 기가 작동하지 않아 한 쪽 엔진으로만 겨우 항해가 가능했다. 그나마 그 엔진마저 중국 함정의 포화에 정지해버렸고 HQ-10은 정지한 후 침몰하기 시작했다.

 

함내에 총원 퇴함 명령이 내려졌고 함장 구이 반 타 중령은 퇴함하지 않고 함교에 남아 침몰하는 함과 운명을 같이 하였다.

 

HQ-16 함은 아군인 HQ-5의 포격에 잘못 맞아 큰 피해를 입었다. HQ-16은 더 버티지 못하고 본토가 있는 서쪽으로 함수를 돌리고 대피 항해를 했다.

 

다른 두 척의 베트남 함정인 HQ-4와 HQ-5도 현장을 피해 도주했다.

 

중국 해군의 함정들도 각각 큰 피해를 입었지만 침몰한 함정은 없었다. 이 해전에는 중국 해군의 전투함 네 척과 월남 전투함 네 척이 얽혔있었다.

 

나중에 중국 해군의 구잠정 두 척이 급파되었으나 이들은 해전이 끝난 후에 도착했다.

 

해전이 있던 다음 날인 1월 20일. 해남도에서 출격한 중국 전투기들의 엄호 아래 서사 군도의 큰 섬 3개에 2개 대대 병력으로 추정 되는 중국군 육전대의 대병력이 상륙하였다.

 

섬에 있던 월남 해병대는 중과부적으로 항복하였고 월남 함대는 다낭 기지로 대피하였다.

 

이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미 7함대는 중국의 미그 기들과 중국의 대잠정들이 서사군도 방향으로 급진 항해중에 있다는 경고를 월남 해군에 전달했다.

 

월남은 미 해군의 도움을 절실히 요청했지만 이미 월남에서 발을 뺀 미국은 이를 냉정하게 거절했다.

 

이 해전이 있은 후 서사군도, 즉 파라셀 군도는 중국의 영토가 되어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서사 군도 전투에서 중국군의 피해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월남 측의 피해는 정확히 보도되었다.

 

엔진 하나만 가동되는 상태로 해전에 참여했던 초계함 HQ -10이 격침되었고 해병들과 해군 53명이 전사하였으며 16명이 부상했다.

 

서사군도 점령 작전에서 중국군은 48명의 포로를 획득하였는데 이 들 중 한 명은 예비역 미군 대위로서 27세의 제랄드 에밀 코쉬였다. 주월 미 대사관은 그가 월남 해군에 파견된 연락관이라고 했지만 그가 미 국방성 소속의 비밀 정보원이라는 설도 있다.

 

중국은 이 분쟁에 미국이 끼어드는 것을 재빠르게 차단하고자 그와 월남군 포로들을 전투 열흘 뒤인 1974년 1월 31일 홍콩을 통하여 송환 시켰다.

 

한국전 중에 중국 연변 산간에 항공 침투했다가 포로가 된 CIA 직원이 억류 20년 만에 석방된 사실과 비교하면 참 이례적인 관용이다.

 

중국이 서사군도를 점령한 뒤에 월남은 유엔에 강하게 호소했지만 이미 유엔에 가입하여 안전보장 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가진 중국을 그 어느 나라도 제재할 수 없었다.

 

월남은 2년 뒤인 1976년 4월 북 월남에게 점령당해서 사라지고 월남은 통일 되었다.

 

북부 월남은 당시 동맹국인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평화적인 해결을 바란다는 덕담 수준의 의사표시만 하다가 통일이 된 뒤에는 태도를 바꾸어 지금까지 강하게 이 섬의 영유권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부터 남부 월남을 패망시키고 월남을 통일한 공산주의 월남을 앞의 남부 월남과의 구별하기 위해서 

베트남이라고 부른다.

 

월남 북쪽의 서사 군도를 손쉽게 집어 삼킨 이후 10여 년간 조용히 지내던 중국의 주먹은 1988년 다시 한 번 움직였다.

 

비록 중국과 한차례 전쟁을 치렀지만 통일 베트남은 중국이 또 다시 영토 분쟁을 일으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두 나라는 베트남이 프랑스로부터의 독립 전쟁을 할 때와 긴 베트남 전쟁동안 막대한 원조를 해준 인연으로 은연중에 믿는 심리적인 면이 있었다.

 

그런 중국이 상식을 뒤 엎는 짓을 했다.  서사 군도는 베트남의 뒷 마당 격의 바다에 있는 군도이었는데 중국은 그 곳에서 베트남의 옆 마당을 한참을 남하해서 거의 앞 마당 격인 남중국해의 남사군도 작은 섬들을 완력으로 집어 삼켜버린 것이다.

 

국제적으로 스프래트리 군도로 알려진 섬들이다.

 

 

  

 

스프래트리 군도

 

 

이 군도는 서사 군도 보다 더 괴상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무려 750개의 암초와 그 보다는 조금 크지만 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돌섬, 산호초 등으로 이루어 졌다.

 

이 암초 덩어리들 750개를 다 합쳐 봐야 총면적이 4 평방km 밖에 되지 않고 물론 사람들은 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흩어져 있는 해역은 무척이나 넓어 필리핀 섬에서 말레지아의 사바 주에까지 걸쳐 있다.

 

이 암초 투성이의 해역은 항해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어류가 풍부히 서식하고 있는 좋은 어장이라는 이점(利點)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1966년에 이 남사군도 일대에 쿠웨이트를 훨씬 능가하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탐사 결과 발표가 나오고 난 후 주변국들이 침을 삼키기 시작하였는데, 워낙 넓은 바다에 흩어져 있는 암초들이라서 주변 각국의 영토 분쟁이 서사군도와는 비교도 안 되게 심하다.

 

비교적 큰 45개의 섬들에는 베트남과 중국과 타이완, 말레이지아, 필리핀에서 파견한 군대들이 주둔하고 있다.

 

 

 

                               남사군도 스프래트리 섬에서 주둔한 베트남군  병력이 분열을 하고 있다.

 

 

 

브루나이도 한 개의 암초가 포함된 남쪽 해역을 자신의 EEZ로서 선언하고 있다.

 

섬의 영유권도 서사군도와 비슷한 내력을 겪었다. 1933년 월남을 식민지로 삼고 있던 프랑스가 서사군도와 함께 이 군도를 월남의 영토로 선언하고 남사 군도에서 가장 큰 섬인 이투 아바 섬에 기상 관측요원을 파견하였다.

 

 

 

 

                                    서사군도의 스프래트리 섬  -베트남 영토며 베트남군이 주둔하고 있다.

 

 

장개석의 중국 정부가 서사 군도와 마찬가지로 남사군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었고, 그러다가 일본의 월남 진주로 일본 영토가 되기도 했다.(일본은 이 군도를 잠수함 전진 기지로 사용하였다.)

 

일본 패전 후에는 국민당 군대가 재빠르게 군도에서 가장 큰 섬인 이투 아바섬을 점령하여 군대를 주둔시켰고, 이 섬을 태평도[太平島]라고 명명하였다.

 

섬은 길이 1,00미터에 폭 400미터의 좁은 섬이다. 이 섬에서는 인간 거주에 필수인 샘물이 풍부히 나와 비교적 많은 인원들이 거주 할 수가 있다.

 

장개석이 본토를 빼앗기고 타이완으로 철수했을 때 이 섬에 주둔하던 국민당 군대도 타이완으로 철수하였으나 1956년도에 슬그머니 다시 들어와서 지금까지 점령하고 있다.

 

타이완에서 이곳까지는 뱃길로 무려 닷새나 걸린다.  남사군도와 멀리 떨어져 있는 타이완의 군대가 이 먼곳에 파견되어 있는 이유인데, 그 성격으로 보아 중국 본토에 바짝 붙어 있지만 타이완이 점령하고 있는 금문 마조도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태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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