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서사,남사군도/미스치프 암초 접수 작전 - 1 편-

 

 

 

한국의 이어도에 시비를 걸어오는 중국의 작태를 보면 느끼는 바가 크다.

 

중국이 과거 남중국해에서 월남의 섬들을 어떻게 강탈해갔는지를 자세히 알아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월남 중부 동쪽의 파라셀 군도와 그 훨씬 남쪽 스트래리 군도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무인 군도들로 암초나 모래톱 수준의 섬들이다.

 

 

 

       중국 해남도 남쪽과 월남 동쪽에 파라셀 군도가 있고 훨씬  남쪽에 스프래트리 군도가 있다.

 

 

파라셀이란 명칭은 포르투갈 뱃사람들이 군도 주변을 둘러 싼 모래톱의 얕은 바다를 부르던 '프라셀'에서 변형된 이름이다.

 

그 아래 스프래트리 군도는 1800년대 중반 이 군도를 탐사했었던 영국 포경선 선장 스프래트리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군도 전체를 자신의 이름으로 명명하고 작은 암초들에는 선원들의 이름를 붙여주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섬 이름이나 암초 이름들에 영국식 이름들이 많다.

 

중국 전한[前漢] 대에 발행한 고대 지도에 파라셀 군도와 스프래트리 군도가 나온다.

 

가장 먼 곳의 스프래트리 군도는 천리장사[千里長沙]또는 만리석당[萬里石塘]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몽골의 중국 점령 기간인 원[元]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원사[元史] 지리지에는 황제가 탐험대를 파견하기도 하였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서사군도 해역

 

 

파라셀 군도와 스프래트리 군도는 명나라 시대와 청나라 때 만들어진 여러 지도에도 나타난다.

 

사람이 와서 살지도 않은 암초들을 뱃사람들의 말만 듣고 기록한 것으로 이 섬들이 역사적으로 중국 땅이라고 중국이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를 근거로 청나라가 망한 뒤에는 광동성의 지방 군벌이, 그 뒤에는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영유권을 주장했고 현재는 중국이 그것을 난폭하게 이어받아서 행사하였다.

 

중국 동포에게 물어보니 중국 국민은 서사 군도와 남사 군도가 당나라 시절부터 중국의 영토였다는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외에 상해 앞 바다에 동사군도가 있다고 한다.] 

 

중국인 주민들이 이주해서 살던 섬도 아닌데 단지 역사에 나타난다는 이유로 중국이 두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세계 각국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하다.

 

중국보다 기록 면에서 늦은 월남이 양 군도를 자기 영토로 표기하기 시작한 것은 1834년부터인데, 프랑스가 월남을 식민지화 하기 전이다.

 

최초로 국제적인 영유권을 선언한 것은 1887년래 월남을 식민지로 경영해온 프랑스다. 프랑스는 1933년 세계에 두 군도[群島]가 식민령 월남에 귀속되었음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 섬들에 기상 관측소를 설치하고 주재원을 파견하였는데 늦었다 싶었던 중국의 장개석 정부가 강하게 항의하며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이를 관철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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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군도의 명칭과 관련해 미리 밝혀 드린다..

 

두 섬의 중국식 이름으로 파라셀 군도는 서사군도[西沙群島], 남쪽 스프래트리 군도는 남사군도[南沙群島]로 불리운다.

 

비록 중국의 명칭이기는하나 이미 국내에 이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고 다소 낮선 서양식 이름보다 서사군도와 남사군도가 한자 문화권의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이런 명칭에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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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군도와 또 훨씬 아래 남쪽에 있는 남사군도, 양 분쟁 도서를 중국이 무력을 동원해서 점령해버린 역사를

여기서 소개하겠다.

 

먼저 파라셀 군도인 서사[西沙]군도 점령 사건이다.

 

서사군도는 중국 해남도에서는 남쪽 방향, 월남에서는 동쪽 방향에 있는, 남중국 해에 있는 사람이 살지않는 섬들의 군도다. 

 

섬들은 습기가 강하고 매우 더우며, 바다 거북과 물새들만이 살 따름이다.[현재는 중국의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다.]

 

이 군도는 30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흩어진 남북 범위가 70km 정도로, 두 무더기로 북쪽의 앰피드리트 군도와 남쪽의 초생달 군도 두 개로 나뉜다.

 

 

파라셀 군도의 한섬.

 

 

말한대로 프랑스가 1933년 남사군도와 함께 이 섬들의 영유권이 식민지 월남에 귀속됨을 선언했었다.

 

태평양 전쟁 종전과 함께 일시적으로 장개석 정부의 중국에 귀속되었다가 다시 남부 월남의 영토가 되었다.

 

중국의 남쪽 먼 변방인 해남도에서도 한참 아래 남쪽의 군도였지만 월남 본토의 중부 지방에 가깝다는 사실로 주변 동남 아시아 국가들은 월남의 주장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국가간에 그 소유권이 분쟁 중에 있는 도서는 서로가 외교전과 선전전을 통해 소유권을 주장하기는 하나, 19세기와 같은 무력 동원은 자제하는 것이 요즈음의 국제적인 추세다.

 

그런데 중국은 자신들이 영유권을 주장하던 서사 ,남사 양 군도를 침공했을 때 치밀한 계획 아래 압도적으로 우세한 육해공군력을 사용하였다.

 

먼저 먹어치운 서사군도는 미국이 철수해버려 힘이 없어진 월남으로부터 강탈한 것이고 훨씬 아래 남사군도는 사실상 월남전 당시 혈맹의 우방이었던 공산 월남으로부터 강탈한 것이다.

 

두 번 다 중국이 상대 국가 군대와 전투를 벌였고 이들을 쫓아 낸 뒤에 섬을 차지하였다.

 

중국의 서사군도 접수 작전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1974년 1월 16일 서사 군도를 초계하던 남부 월남의 호위 구축함[HQ-16]은 일단의 중국 민병대들이 로버트 섬으로 알려진 한 무인도에 상륙하여 중국 깃발을 꽂고 점령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사 군도 -파라셀 군도

 

 

두 척의 중국 군함과 소해정이 섬에 근접하여 중국 민병대를 지원하고 있었다.

 

월남 군함 HQ-16은 중국인들에게 불법으로 영토 침입을 했으니 물러나라고 요구하였으나 중국 해군은 오히려 월남 해군에게 영해를 침범했으니 퇴거하라고 요구했다.

 

기막힌 생각이 든 월남 호위함장은 이 사실을 함대 사령부에 보고했고, 밤새 양 국의 해군은 상호 감시만 하며 대치했으나 해전은 없었다.

 

17일, 급히 달려 온 30여명의 월남 해병대가 중국이 점령했었던 로버트 섬에 다시 상륙하여 중국 깃발을 제거했고, 후에 월남 해군의 HQ-4가 증원 병력을 싣고 도착하여 섬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한편 주변 해역에서 맴돌며 월남 해군의 동태를 감시하던 중국 해군 함대에 두 척의 중국 초계함이 합류했다. 중국 해남도에서 파견한 군함들로 추측되었다.

 

상황 발생 이틀 후 1974년 1월 18일, 월남 해군 함대 사령관 하반 각 대령이 호위 구축함 HQ-5함을 지휘하며 긴장이 깔린 현장으로 왔다.

 

 

초계함

 

 

월남 해군의 초계함 HQ-10 이 힘들게 동행해 와서 초계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초계함은 500톤 미만의 쾌속함정이다.] HQ-10은 엔진 한 기만이 작동되고 있었는데, 그런 함정까지 동원해야 할 만큼 월남 해군의 장비는 열악한 수준이었다.

 

그 다응 날인 1974년 1월 19일 함대 사령관이 지휘하는 HQ-5 함은 수송해온 병력을 던칸 섬에 상륙시키려다 섬에 잠복한 중국군들에게 사격을 받았다.

 

HQ-5함은 섬으로 급속 돌진해가며 함포 사격을 가했지만 섬에 잠복하고 있던 중국군은 예상외로 많았고, 세 명의 월남 군이 죽고 두 명이 중상을 입었다.

 

결국 월남군은 타고 왔던 구명정으로 긴급 철수해야 했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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