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을 기억하시나요?




북한에 포로로 잡혀있다가 1994년 귀환한 고 조창호 중위가 위문 온 이병태 전 국방장관에게 병상에서 일어나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인데요.. 당시 많은 국민들을 감동시킨 장면이었죠..

조창호 중위의 귀환 이후 현재까지 약 80여명의 국군 포로가 북한을 탈출하여 귀환하였습니다.

☞ 국군포로 문제
 국제법상 전쟁이 종전되거나 휴전되면 전쟁포로의 억류국은 상대방과의 협의를 통해 포로를
 즉시 송환해야 합니다. 6.25 전쟁 당시 우리는 국군포로와 실종자를 약 8,200명 이상으로
 추정한
 반면, 북한은 송환 협상 당시 우리 측 포로를 이보다 훨씬 적은 8,300명으로 통보하고
 이들만을
 송환하였는데, 이로인해 미송환 국군포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들 귀환 용사들은 수 십년 간 이질적인 사회에서 살아왔던 만큼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달라진 사회·문화 환경에 적응하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국가와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주위의 따뜻한 배려로 이를 잘 이겨내고 있다고 하는데요

국방부에서는 이분들이 편안히 정착할 수 있도록 특별지원금과 무상의료 지원 등 다양한 법적·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하여 지원하는 한편

이분들이 정착과정에서 겪게되는 심리적 충격 등을 완화할 수 있도록 매년 귀환 용사들을 초청하여 위로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부산 지역에서 그 행사가 있었는데요 국방부 직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이신 귀환 용사와 그 가족들을 따뜻이 맞이하였습니다.
 
귀환 용사들이 대부분 70~80세의 고령인지라 휠체어도 준비하고 또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군의관과 의무병까지 동반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다해 행사를 준비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방부 직원들이 귀환 용사분들을 부를때 "ㅇㅇㅇ할아버지", "ㅇㅇㅇ아바이"라 호칭하더군요. 상당히 친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았더니,
 
국방부 직원들이 생일 등 경조사 때 방문하는 것은 물론이고 애로사항 등을 알아보고 해결해 주기 위해 정기적으로 가정방문을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귀환 용사들이 맨처음 방문한 곳은 유엔 기념 공원이었습니다.
(유엔 기념 공원에 대한 소개는 이전 글을 참고해 주세요..)


60여년 전 함께 싸웠지만, 전장에서 먼저 생과 사를 달리하고 타국(우리) 땅에 묻힌 전우들을 찾은 귀환 용사들은 그들에게 헌화를 하고 묘역을 둘러보았는데요




일반 방문객과는 다른 색다른 감회에 젖는 듯 했습니다.




이어서 거제도로 이동, 대우조선해양(옥포 조선소)과 거제도 포로 수용소 유적 공원를 방문했습니다.


옥포 조선소는 연간 70여 척의 대형 상선과 육해상 플랜트 10여기를 생산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건조능력을 갖춘 조선소였는데요.. 일반 상선 뿐만아니라 이지스함을 비롯한 각종 군함과 잠수함을 건조하는 방위산업체이기도 하였습니다.(우리나라의 잠수함 중 9척을 이 곳에서 제작했다고 합니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상선과 군함, 잠수함의 건조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드리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한 귀환 용사 할아버님이 자리를 뜨며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알게되었다. 감사하다." 며 회사 관계자에게 인사까지 하시더군요. 아마도 우리나라의 국력이 커졌다는 생각에 조금은 감격하신 것 같았습니다.



다음으로 들른 거제도 포로 수용소 유적 공원..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50년 2월부터 360만평 규모로 설치되었는데 이 곳에 인민군 15만, 중공군 2만, 여자 포로와 의용군  3천명 등 최대 17만 3천여명이 수용되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유적 공원으로 새롭게 조성되어 안보교육의 장 뿐만 아니라 관광 명소가 되어있는데요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과 수용에서 부터 송환까지 수용소의 역사를 주제별로 잘 구성해 놓아 그 당시 실상을 잘 알수 있었습니다.




적군이었지만 같은 포로의 입장이었던 이들의 생활상과 자신들이 겪은 포로 생활을 비교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힘들면 쉬어가다가.. 
국방부 직원에게 기념사진을 부탁하기도 하며 둘러보았습니다.



평일이었지만 수학여행을 온 듯한 학생들과 등 많은 일반인 관광객들이 찾고 있었는데요.. 아주 먼 옛날 역사 속 이야기인 듯 신기해 하며 즐겁게 웃고 떠드는 학생들과 한자리에 서 있는 귀환 용사들의 모습이 대비될 때는 왠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하더군요..


 




사실 귀환 용사들과 함께하면서도 이분들이 실제로 60여 년을 북에서 살다 오신 분들이라는게 잘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요(문득 문득 북한 말을 사용하실 때는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만..),

행사 일정 중 준비된 간담회와 만찬 자리를 통해 귀환 용사 분들이 겪고 있는 심경과 어려움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귀환 용사분들은 북에서 60여년을 살면서도 국군임을 잊지 않고 항상 조국에 다시 돌아가겠다는 일념을 갖고
 살아왔기에 이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며..

 "우리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임무는 후손들에게 다시는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는 일
"이라고 생각한다 하시더군요.

 그리고 본인들은 비록 국가의 배려와 지원으로 편안한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많은 국군 포로 동지들과 북에 남겨진 가족들 생각에 가슴 한켠에는 항상 걱정과 그리움이 서려있다며,
 국가가 지속적으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부탁하기도 하였습니다. 


간담회 후 만찬 시간에 인상 깊게 남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식사와 함께 노래 실력도 뽐낼 수 있는 자리였는데요, 우리나라 가요를 모르시는 터라 대부분은  '아리랑', '도라지 타령' 같은 민요를 부르시며 흥겨워 하시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귀환 용사 할아버님 한 분이 군가를 부르셨습니다. 1절부터 3절까지 긴 가사를 한 글자도 틀림없이 모두 기억하며 부르셨는데,

 "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 /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자라...(군가 "전우야 잘자라")"

비록 백발에 허리는 굽었지만, 목소리와 눈빛, 표정을 보니..
그 할아버님은 아직도 60년 전 그 전쟁터 한 복판에 서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고..듣는 이들 모두에게도 그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분위기가 숙연해졌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국방부 직원들에게 일일히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돌아가시는 귀환 용사와 그 가족 분들의 뒷 모습을 보며..
 
부디 통일이 되는 날까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서 북에 두고온 그리운 가족과 동지들을 꼭 만나게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갖게 되었는데요..

한편으로 그 바램은 지금 그분들의 희생과 맞바꾼 자유와 풍요를 누리고 있는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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