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의 기습

 

 

얼스터 대대가 철수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된 중공군의 작전은 교묘하였다그들은 병력 미상의 부대를 삼하리 철수로를 서쪽으로 우회해서 메네미 고개로 직행하여 메네미 고개에 매복하게 하였다그리고 직경 2 km의 포위망이 완성된 후에야 영국군 철수 후미가 통과하는 곡릉 천변에서 첫 기습을 가했다전투장에서 전투를 목격한 사람의 회고부터 들어보자,

 

10대 소년으로 전투를 목격한 이태호씨와 로빈 찰리 대령 부녀

 

지금은 80이 다 되어가는 이태호씨 부부는 10대에 해피 밸리 전투를 경험한 사람이다그의 집은 얼스터 대대 철수로 옆에 있었다그는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가 집 앞을 줄지어 통과하는 차량들이 요란하게 내는 소음에 놀라 잠을 깼다그 굉음들은 트럭들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컸다. 이태호 씨는 다음 날에야 이 소음들이 크롬웰 전차들이 내던 소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14량의 전차중 두 량은 출발도 못하고 터널 앞에서 대기하던 중에 기습이 터졌다.)

 

 

마지막 철수 부대인 쿠퍼 대위 지휘의 크롬웰 탱크들이 이태호 씨의 집을 거의 통과해 갔을 때 곡릉 철교 쪽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터져 나오며 전투가 시작되었다어린 태호 소년은 수많은 총소리와 함께 해피 밸리의 밤 하늘을 온통 뒤덮은 중공군의 연락 신호인 대나무 피리 소리를 공포 속에서 들으며 밤을 지샜다 

 

전사자가 다수 발생했었고 기억이 많이 흐려진 탓에 증언들이 부정확해서 이 전투 발생 시간과 전투에 대해서 영국측 전사는 아주 모호하다그러나 전후 사정으로 보아 최초 기습 시간은 자정 전후로 추측된다사전에 영국군의 움직임을 상세히 파악하고 철수로를 차단 포위하고 있었던 중공군의 공격은 치밀했다그들은 자기들의 덫에 탱크를 비롯한 사냥감들이 최대로 들어왔을 때 덫을 터뜨렸다 

 

중공군의 포위 덫 날의 한 날이 대대가 일차 기습 목적지인 작은 마을 불미지리에서 직선거리로 200미터 떨어진 곡릉 철교 부근에서 덮쳤고 동시에 다른 한 날은 좁은 길을 따라 나있는 메네미 고갯길 전방에서 덮쳐서 영국군의 머리와 다리를 한꺼번에 움켜쥔 뒤에 포위 공격을 개시했다는 것이 적적할 표현일것이다최초의 공격은 곡릉철교 건너 강가에 매복한 중공군의 기관총이 불을 뿜으면서 개시되었다이 기관총은 나중에 맥코드 중위에 의해서 수류탄으로 제압되었다그는 이 공로로 훈장을 수여받았다.

 

 

 

최초 기습의 기관총탄 흔적이 철교 교각에 나있다.

 

 

전투는 혼란의 연속이었다중공군의 지휘관은 매우 노련하였다기습으로 얼스터 대대의 지휘 체계를 충분히 흔들어 놨다고 판단하고 언덕 뒤에 대기하고 있던 예비 병력을 전투장에 투입하였다. 돌격 나팔 소리와 함께 언덕으로부터 흰 위장복을 입은 중공군 대병력이 언덕 아래 얼스터 대대의 측면으로 눈사태처럼 쏟아져 내려왔다,

   

중공군이 항상 장기로 삼는 단병접전(短兵接戰-SHORT ATTACK)의 전술이 어둠 속에서 실행되는 순간이었다적의 공격은 집요했다그들은 피리 소리로 부대 지휘를 하여 몰려와 삽시간에 얼스터 대대원들과 뒤섞여 버렸다아무리 정예 부대라도 이 상태로 기습을 당해 지휘체계가 붕괴 되었다면 어쩔 수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중공군은 근거리의 얼스터 병사들을 닥치는대로 쐈다얼스터 대대원들도 스텐 기관총과 소총, 브렌 기관총으로 용감하게 응전했으나 이미 지휘체계가 마비된 상황에서 그것은 각 병사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여기서 전투는 탈출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얼스터 대대원과 이를 살육하려고 쫓는 중공군 때문에 전투장이 서쪽과 남쪽으로 직경 2km정도로 확대되었다.

 

중공군들은 보병뿐만 아니라 쿠퍼 대위의 크롬웰 전차를 노리고 공격하였다현지에 가보면 알겠지만 깜깜한 칠흑의 어둠속에서 우마차나 다닐 좁은 도로 위에서 설사 독일의 전차 에이스인 미하일 비트만을 데려다 놓아도 그가 할 수있는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중공군들은 전차에 쇄도하였다로켓포같은 대전차 무기가 없던 중공군이 노린 것은 크롬웰 전차의 약한 궤도였다영국 전사는 이들 중공군들이 특수한 공병용 폭발물로 궤도를 폭파시켰다고 하는데 현지 노인 분들은 중공군들이 방망이 수류탄을 사용했다고 증언했었다그러나 여러 상황으로 보아서 중공군들이 사용한 궤도 폭파용 폭탄은 중공군들이 방망이 수류탄 세 개를 하나로 묶어 상자에 넣은 '폭파통'이라는 것이 아닌가 한다.

   

폭파통이 아니면 잘라진 원추형의 방망이 수류탄 손잡이 두 개를 한쪽으로 하고 한 개를 반대 방향으로 하여 끈으로 묶은 임기응변식의 급조한 대형 폭발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중공군은 개전 초부터 이 급조 무기를 대폭 사용했었다주로 기관총 진지나 토치카를 공격할 때 이 무기가 사용되었었다.

  

크롬웰 탱크들은 이 원시적인 무기에 궤도가 잘라져 기동력을 잃고 무력화 되었다크롬웰 전차대의 소대장 알렉산더는 사방에서 공격하는 중공군들을 피해서 곡릉천 제방 위를 달렸다기동하면서 그는 중공군의 박격포와 기관총 진지에 75mm 전차포를 발사했다크롬웰 전차들과 보병들은 적이 점거한 불미지리 마을로 진입했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전차는 불미지를 통과했지만 적의 폭파통 공격으로 궤도가 벗겨지고 정지해야 했다알렉산더는 고개를 내밀고 상황을 살피다가 피격당해 전사했다. 그의 전차 승무원들은 전차를 버리고 탈출했다뒤에서 후속하던 대장 쿠퍼 대위 역시 전차 궤도가 끊어져 포수와 함께 곡릉천쪽으로 피했지만 이들은 중공군 20여명에게 포위당하는 것을 목격당하는 것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생각지도 않은 기습을 만난 대대장 대리 블레이크 소령은 이 비상시에 교과서적인 지휘를 하였다최선의 행동은 이 매복 지점을 벗어나는 길이었다그는 대대원들에게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 매복 지점을 벗어나라고 명령하였다하지만 그나 다른 얼스터 간부들은 메네미 고개 입구에 매복한 중공군들이 통과하고 있는 얼스터 철수 부대를 공격하고 있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쿠퍼 대장 역시 혼전중에 불미지리 외곽에서 전사했다단지 매복 지점을 벗어난 지점의 얼스터 부대원 중에 멀리 메네미 고개를 올라가는 길에서 기습을 받은 유조차가 환하게 불타는 것을 보고 전방에도 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따름이다

 

 

 

해피 밸리 추모비 앞에 긴 길이 격전이 있었던 쟁고개와 메네미를 잇는 길이다얼스터 대대원들에게는 죽음의 길이다.

 

 

전투는 곡릉 철교에서 200야드 떨어진 불미지리로 연결되었다. 초가집들이 불타고 이 부락 골목에서 전투가 이어졌다불미지리는 해피 밸리 전투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지명인지라 영국의 해피 밸리 전투 전사에 많이 나온다. (풀미지리로 기록되어 있다.) 해피 밸리의 전투가 거의 이 부락 주변에서 벌어진 것으로 기록되기도 하다

 

해피 밸리의 위치가 당시의 전투 상황도에 많이 나오는데 위치가 잘못되어 곡릉천 남쪽에 위치한 것으로 나온다실제는 곡릉천 북쪽에 있다지금 불미지리는 한국의 다른 농촌처럼 많은 사람이 떠나고 현재는 댓채의 가옥들만 남아있을 뿐이다.

 

 

 

 현재의 불미지리 동네 입구-중공군이 공격한 선유동 계곡 입구에 위치해있다.

 

 

없어진 옛 집들의 집터들은 수익좋은 비닐 하우스들이 차지하고 있다단지 마을 중심부로 추측되는 곳에 백년은 넘어 보이는 느티나무가 자리 잡고 있어 이곳이 옛 마을이 있던 곳임을 알려줄 뿐이다.

  

 

 

메네미 고개의 매복

 

  

한편 메네미 고개에서 더 큰 학살극이 기다리고 있었다이곳은 논 사이를 달려온 작은 길이 오르막으로 연결되는 곳이라서 좌우가 산으로 막혀있어 피하기는 어렵고 매복하기는 좋은 지역이다이곳에서 얼스터 대대원들이 최대의 피해를 입게된다.

 

 

 

 

 

 맨 아래 원안이 메네미 고개 입구다그 위가 첫 기습이 가해진 곡릉천 철교, 더 위 원안이 대대 본부가 사용했던 채근현(제궁현)터널이다불미지리의 위치가 잘못되어 있다말했지만 불미지리는 곡릉철교에서 서쪽으로 200 미터 지점 강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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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포진한 중공군은 좁은 고갯길에 완전히 갇혀버린 차량대에 소낙비같은 실탄을 퍼붓고 피신하는 얼스터 대원들을 사살하였다

 

 

 

메네미 고개로 올라가는 곳에서 올라오는 소로를 위에서 찍은 것 

 

 

바로 이 지점에서 부터 기습이 가해졌다사진에 안 보이지만 왼 쪽에 옛 해피 밸리 묘역이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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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 전사는 해피 밸리의 주요 격전장으로 불미지리를 말하지만 실상 현지 노인분들에게 물어본 즉 예외없이 이구동성으로 얼스터 대대원들의 최대 전사자가 발생한 곳은 바로 이 메네미 고개 입구라고 한다해피 밸리 전투 최대 혈전장인 이곳에 나중에 전사자들을 안치한 해피 밸리 묘역이 설치되었었다.

   

그러나 메네미 고개의 혈전을 증언하는 증언자가 없으리만큼 이 매복 공격의 전투 경험자는 전원 전사하지 않았나 하는 염려가 된다중공군이 포위 매복을 했던 불미지리와 메네미 고개의 긴 포위망 중간에도 수없는 트럭들이 줄지어 있었다이 지역은 주변에 언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논들이었다

 

 

 

메네미 고개의 정상에는 북한군의 전차 공격에 대비하여 대전차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다이 사진을 촬영한 지점까지 크롬웰 전차가 올라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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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대가 불미지리의 후방과 메네미 고개의 전방에서 공격을 당하자 얼스터 장병들은 급히 차에서 내려 전투 태세를 취했지만 다행히도 아직 긴 차량 행렬의 양 매복 지점 중간에는 얼스터 대대를 공격하는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었다쇼우 소령은 이 기회를 잘 잡았다.

 

그는 70여명의 병력을 지휘해서 방향을 서쪽 세시 방향으로 돌려 동서로 뻗은 메네미 고개 능선 서쪽 1km 지점 고개로 달려갔다그는 이곳에 중공군 병력이 배치되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능선을 넘어 서울 쪽으로 뛰었다그가 만약 어물거렸다면 그의 부대는 곧 중공군들에게 발견되어 전멸의 위기를 맞았을 지도 모른다.

  

쇼우 소령은 후에 한국 전쟁에서 전사했지만 해피 밸리 전투에서 타이밍을 잘 맞춘 과감한 리더십으로 부하 장병들의 생명을 구한 공로를 세웠다자정쯤 시작한 전투는 새벽이 다가오는 03:40에 종료되었다.

 

 

 

전투 후-불미지리 지역

 

 

이태호 소년은 밤새 총소리와 피리 소리에 불안에 떨며 잠을 자지 못했다아침이 되었다그는 조심스럽게 집 밖을 내다보다가 길에 트럭들과 탱크들이 그대로 엔진이 걸리고 헤드라이트를 켠 채 서있었고 주변에 얼스터 대대원들의 전사체들이 널려있는 것을 보고 무서워서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한편 미래에 그의 부인은 해피 밸리 전투 때 아직 어린 소녀로서 멀지 않은 불미지리에 살고 있었다. 

 

그녀 역시 미래의 남편 이태호 씨의 경우와 같이 취침하는 중에 무서운 총소리와 피리 소리에 놀라 일어나 밤새 떨어야 했다날이 밝자마자 그녀와 어머니는 옷가지와 이불을 싸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가기 위해서 였다골목길에는 죽은 영국군의 시체가 가득하였다.

 

그녀와 엄마는 정신없이 달음질을 하여 동네 밖으로 나왔다그녀도 영국 트럭들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시동이 그대로 걸려 있어 엔진 소리를 크게 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동네 밖에 나오자 총을 메고 보초를 서고 있는 중공군이 있었다중공군은 무서운 표정을 지며 손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모녀는 할 수없이 집으로 돌아왔다돌아오는 길에 전사한 영국군의 시체들이 널려있었다중공군들의 시체는 그들 동료들에 의해서 이미 어디로 치워졌었다그러나 얼스터 장병들의 시체는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방치 정도가 아니었다. 얼스터 대대원이 죽거나 탈출한 현장에서는 중공군들의 약탈이 극성을 부렸다.

 

중공군들은 전투 중간부터 틈만 나면 몇 차례나 사체를 뒤지고 중요 전리품을 챙겼다. 전사자들은 자켓과 바지 군화등은 모두 약탈당해서 거의 내복 차림이거나 나체였다어린 그녀는 가슴이 떨려서 그들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이국의 금발 청년들이 먼 타국의 이 마을에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너무도 불쌍하게 생각이 되어서 였다.

 

그녀는 집에 들어오는 내내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발 끝만 보고 걸었다그녀는 불쌍한 영국 청년들의 모습이 자주 떠올라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전투후- 메네미 고개 지역

 

 

한편 메네미 고개를 넘어 서울로 피난을 가다가 스파이들의 총격을 보았던 이성기씨 가족 네 명은 그날 겨우 구파발을 통해 서울로 들어가 자정쯤에야 구파발 남쪽의 연신내 친척집에서 하룻 밤을 지새웠다새벽에 일어나 다시 남쪽으로 피난을 가는데 길 옆 논길로 흰 위장복을 입은 일단의 중공군들이 서울 중심지로 행군해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맥이 탁 풀렸다이씨 가족은 막강한 화력을 가진 얼스터 대대가 잘 싸워서 당분간은 잘 방어할 줄을 알았었다그런데 무장도 시원치 않은 저 거지 복색의 중공군이 어떻게 해서 영국군을 압도하고 이 곳까지 전진해 왔다는 말인가11살의 동생 준기 소년에게 그것은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었다중공군이 자기들을 앞서 가는 상황에 더 이상 피난을 가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어머니는 기운 없이 말했다.

 

얘들아. 집으로 돌아가자.”

 

이 날이 바로 195114일이었다대 비극이었던 서울 시민들의 피난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날이었다이날로 서울의 마지막 철수는 완료되었다마지막 방어선 해피 밸리에서 영국군을 격파한 중공군은 더 이상의 방해를 받지 않고 서울로 입성할 수가 있었다이 씨 모자들은 온 길을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점심 무렵이었다이 씨 모자들이 메네미 고개를 넘어서자 끔찍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메네미 고개에서 쟁고개 방향으로 가는 길에 수백대의 차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고 차 주변에는 전사한 얼스터 장병들의 사체가 즐비하게 쓰러져 있었다메네미 고개 정상 아래에 영국 크롬웰 전차 한 대가 궤도가 날아간 채 서있었다.

   

엔진도 그냥 돌고 있었고 헤드라이트도 켜진 채였다앞을 가로 막는 차량들 옆의 갓길을 힘겹게 뚫고 그 정상까지 올라왔다가 공격당한 전차였다. 포탑에서 전차병 한 명이 상반신을 앞으로 하고 엎드려 있었다전차가 파괴된 뒤 햇치를 열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중공군이 쏜 총에 전사한 전차병의 사체였다.

   

모자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 그 곳을 지나 메네미 고개의 북쪽 입구에 도달했다. 나중에 해피 밸리의 묘역이 설립된 곳이다

 

 

 

 

메네미 고개 정상 사진, 다시 올린다 

아래 사진과 대조해보시기 바란다.

 

 

   

 

위의 현재 메네미 고개 사진 참조하시기를 바람.

   

 

해피 밸리 전장에 사시는 서너명의 어르신들은 이 고개가 메네미 고개가 확실하다고 확인해주었다이준기씨도 자기가 본 영국 전차가 사진의 전차일 가능성이 100%라고 했다이 사진이 그로스터 연대 박물관에 있는 것은 이 길(해피 밸리 길)1951년 봄 임진강에 배치된 그로스터 대대로 가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에 지나가던 그로스터 대대원이 촬영했음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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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참혹함은 충격을 주었다수백구의 시체가 고개로 올라오는 골짜기 어구에 어지러히 널려있었다차들에 총탄 자국이 곰보처럼 나있었으며 불탄 차들도 여럿 있었다그런가 하면 헤드라이트도 여전히 켜있고 엔진이 돌아가는 차도 있었다이때가 점심 때라면 차의 엔진이 열 두 시간 이상 돌고 있었던 것이다이씨 모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메네미 고개 지역을 빠져나왔다.

 

차들이 서있는 얼스터 철수 길을 되집어서 집으로 가고 있는데 한 지점에서 지금도 가슴에 못이 박히듯 기억이 생생한 한 장면을 보았다한 곳에 얼스터 장병들이 여러 명 쓰러져 있었는데 그 중 한 장병은 희미하나마 의식이 있었다그는 이씨 모자들이 지나가는 것을 알아 차리고 엎드린 자세로 힘든 손짓으로 이들을 불렀다.

   

이씨 모자들은 당장 달려가서 이 중상자를 돌봐주고 싶었으나 앞에서 총을 든 중공군이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얼스터 장병을 돌봐주다가는 총격을 당할 것 같았다이 씨 모자들은 힘들게 고개를 외면하고 집으로 향했다이석기 형제는 그런 중상자가 죽어 가는데 옆에서 지켜만 보는 중공군에게 느꼈던 안 좋은 감정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셋째 아들 이준기씨가 기억하는 것은 얼스터 대대 트럭들이 여러가지의 군수품을 싣고 있었다는 사실이다한 트럭은 질 좋은 영국제 담요를 가득 싣고 있었고 세 트럭들 위에는 다른 무기와 혼적한 엔필드 소총들이 담요로 덮여진채 적재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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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트럭마다 57이라는 숫자가 써진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어린 마음에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었다62년의 세월이 흐르고 해피 밸리 추모식장에서 만난 한 노병이 그 비밀을 풀어주었다얼스터 대대에서 엠브란스 운전병을 했으며 해피 밸리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갔다가 송환된 알버트 로버트씨였다.

 

그 분이 보여주는 사진의 엠브란스에 57이라는 숫자가 있는 것을 보고 이준기씨가 물어 보자 로버트 씨는 이 번호가 대대번호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해피 밸리 전투장을 방문한 알버트 로버츠씨. 그는 포로 생활을 하고 귀환했다.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