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전 초기 단 한대의 전차도 보유하지 못한 국군에 비해 242대의 T-34를 적은 양이라 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북한군이 보유한 3,800여대의 전차에 비하면 그리 많다고 볼 수도 없다. 상대적으로 따져 봐도 당시의 북한군이 총 20여만 이었으므로 병력 대 전차 수로 900여대 정도가 있어야 오늘날과 비슷한 전력으로 추산할 수 있다. 따라서 그동안 막연히 많다고 생각하던 242대가 전쟁의 모든 것을 결정할 만큼의 양으로 보기는 힘들다.

 

 

현재 북한군은 약 3,800여대의 각종 전차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 된다

 

 

또한 북한군은 기갑 부대를 운용하면서 몇 가지 실수를 하였는데 가장 큰 문제는 기갑 부대를 전술적으로만 운용하였다는 점이다. 2차대전당시 소련군은 기갑 부대를 주로 보병의 지원수단으로 운용하였는데 북한군도 이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당시 북한군의 전차가 생각보다 많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지만 한 대도 없던 국군을 고려한다면 굳이 보병 지원용으로 전차를 분산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북한은 소련군 교리에 의거하여 기갑부대를 운용하였다

 

 

 

105땅크여단도 독립 부대로 편성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예하 연대는 타 보병부대에 예속되어있었다. 더구나 천천히 접수하기만 해도 되는 인천 점령에 전차를 동원하였을 만큼 그 운용도 중구난방이었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은 많은 전차를 보유하지 않았지만 집중 운용하여 전격전의 신화를 만들었다. 만일 전쟁 초기에 북한군이 독일군의 교리를 따랐다면 부산까지 쾌속의 진격을 하였을지도 모른다.

 

 

독일의 전격전 신화는 단지 전차가 많아서 이룬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분산 운용된 북한군의 기갑 전력은 초기 진격에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였다. 화력 및 장갑 능력과 더불어 전차의 3대 요소인 기동력이 보병의 속도와 보조를 맞추느라 제한을 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이들은 한 번 정도 고개를 꺄우뚱 할 것이다. '불과 3일 만에 서울을 내주었을 만큼 북한의 진격이 매서웠는데 무슨 소리냐'하고 말이다.

 

 

3일 만에 서울을 내주었지만 이를 쾌속진격의 증거로 보기는 힘들다

 

 

 

처음 설명하였다시피 전체 전력 기준으로 북한군은 국군에 비해 5 : 1 정도의 우세를 보였다. 그런데 그러한 압도적인 전력으로 38선에서 40킬로미터에 불과한 서울까지 밀고 오는데 3일이나 걸렸다는 것은 결코 빠른 속도가 아니다.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3일을 단순히 시간의 개념이 아닌 거리 대 시간 그리고 여기에 전투력을 대입하여 보면 이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압도적 전력으로 40km 진격에 3일이 걸린 것을 쾌속진격이라 할 수 없다

 

 

물론 길이 잘 닦여있어 당시와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현재 광화문에서 개성 공단까지 차량으로 1시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이정도 거리를 압도적인 전력을 내세워 진격하여 오는데 3일이 걸렸다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국군이 무조건 참패만 당하며 일방적으로 밀려난 것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히려 북한군의 초기 전술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북한군은 속도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였다

 

 

 

북한군은 전쟁 초기에 아군을 붕괴시켰음에도 10일간 80킬로미터만 돌파하였을 뿐이었고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가 최대 진격을 이루었던 810일까지의 40일간 일일 평균 진격 속도는 6킬로미터 정도에 불과하였다. 1950년 겨울 중공군이 참전 초기에 하루에 20~30킬로미터를, 그것도 산길을 통해 흔하게 돌파하였던 것과 비교하더라도 얼마나 느린 속도인지 알 수 있다.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오는 동안 북한군은 상당수의 전차를 상실하였다

 

 

둔중한 전차가 아무리 느리더라도 보병보다는 당연히 빠르다. 그런데 이러한 전차로 하여금 보병 속도에 진격을 맞추었으니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일 북한군이 제2차대전 당시의 독일처럼 전차를 집중하여 종심 깊숙이 타격하여 휘 젖고 다니고 보병이 후속 진출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면 전쟁의 초기 모습은 엄청나게 달랐을 것이다. (계속)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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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격전 2014.06.05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일전격전은 구데리안이 생각한 전차의 4요소말고도 전차속도를 맞추어 이동하는 보병,포병,통신을 차량화하여 최대한의 속도를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즉 장갑차, 자주포,통신차량등이 재빨리 전차와 속도를 같이하여 공격했기 때문에 적의 방어선을 무너뜨린것이기 때문에 장갑차량없이 걸어서 이동하는 북한군에게 그런 전술을 요구하기 힘듭니다.

  2. ㅁㄴㅇㄹ 2014.06.06 0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가 좀 이상한게 있는데, 소련의 교리가 보병지원용으로 전차를 주는거였나요? 저때는 이미 제파식전술이니 뭐니 해서 집중운용하던 시기 아닌가요? 그보다는 북한 수뇌부의 오산과 운용경험 미달에서 오는 실수가 한몫했다고 봅니다.

  3. KOREA 2014.06.10 0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먼저 소련군사고문단이 작성한 선제타격계획을 생각해야 됩니다.
    아무런 작전계획없이 막치기로 내려온듯이 설명하면 안됩니다.

    북한2군단의 603모터찌크연대가 6월27일 자정까지 수원인근에 도착하고
    북한1군단이 6월28일 0시 이후에 서울을 점령하면
    국군이 후퇴 할것이고, 대기하던 모터찌크연대가 후퇴하는 국군을 섬멸하는 작전입니다.

    처음부터 서울점령 계획은 6월28일입니다.
    실수는 없었습니다.

  4. 2015.09.12 0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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