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기(Liaison)라는 특정 목적을 위하여 운용되는 군용기가 아직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2차대전 당시에 미군이 메뚜기(Grasshopper)라고 불렀던 연락, 정찰용 경항공기 중에 L-4 Piper Cub이라는 경량 군용기가 있었다. 무장도 없고 최고 속도가 시속 130킬로미터 정도였으니 군용기라기보다는 요즘 레저용으로 애용되는 경량 항공기로나 쓰일 만한 물건이었다.

 

 

미 육군이 연락기로 사용한 L-4


 

하지만 이렇듯 볼품없는 L-4는 우리가 최초로 운영하였던 역사적인 공군기였다. 우리 공군은 1946810일 결성된 민간 단체였던 한국항공건설협회에 참여하였던 여러 인물들이 주축이 되어 194855일 조선경비대 제1여단 항공부대로 창설된 것이 시초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한 명칭과 달리 정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비행기는 보유하고 있지 못하였다.

 

 

국군의 모태가 되는 1946년 국방경비대의 훈련모습. 구 일본군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해 913일 서울에 주둔하던 미 7사단 항공대로부터 총 10기의 L-4를 인수받은 후, 부대명을 항공기지사령부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였다. 비록 미군들에게는 메뚜기라고 불리던 보잘 것 없었던 존재였지만 대한민국 공군에게 L-4는 최초의 작전기였다. 드디어 915일 동체와 날개에 커다란 태극마크를 그린 L-4 편대가 서울 상공에서 역사적인 시범 비행에 들어갔다.

 

 

역사적인 전시비행중인 L-4편대


 

광복군 출신이었던 최용덕 당시 국방차관은 전시비행을 바라보며 "내나라, 내강토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비행하는 비행기를 보니 죽어도 한이 없다."며 눈물을 흘렸을 만큼, 당시 L-4편대의 비행은 모두를 감격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후속 도입된 L-5 연락기를 비롯하여 총 20여기의 항공기와 천여 명의 인원으로 1949101일 대한민국 공군은 정식으로 발족하였다. 하지만 전투기를 보유하여야 진정한 공군이라 할 수 있었다.

 

 

L-4 앞에서 지상훈련중인 모습

 

 

그러나 미국은 한국 공군이 38선 정찰 임무 정도의 역할만 담당하면 충분할 것으로 판단하여 우리의 간절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전투기 공급은 거부하였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창군한 북한 공군은 전투기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200여기의 군용기를 보유하였다. 이에 위기를 느낀 우리 정부는 항공기헌납운동을 벌여 모금된 성금으로 캐나다에서 10기의 T-6 Texan 훈련기를 도입할 수 있었고 이를 건국기(建國機)라고 명명하였다.

 

 

건국기로 명명된 T-6

 

 

L-4L-5에 비하면 T-6은 상당히 고성능 항공기였지만 이 역시 공대공전투나 공대지공격에 사용할 수 없는 단순 훈련기였다. 결국 6.25전쟁 발발 당시에 우리 공군은 연락, 항공관측, 훈련의 용도에만 쓰이는 8기의 L-4, 5기의 L-5 그리고 10기의 T-6만 보유하여 전투력은 전무한 상태였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공산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메뚜기를 비롯한 이들은 아무런 망설임이 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출격하는 L-5 편대


 

비록 공대공 전투로 적기와 맞설 수 없었지만, 남진하여 내려오는 적전차를 막기 위해 공군은 망설임 없이 전선으로 날아갔다. 그들은 부평의 육군병기창에서 제작한 30파운드 국산폭탄 2~3발을 후방석의 정비사들이 휴대하고 있다가 눈으로 조준하여 손으로 투하하는 육탄작전을 펼쳤다. 좀 더 대형이었던 T-6은 날개에 폭탄걸이를 급조 장착하여 작전을 펼쳤으나 이 또한 제1차 대전 수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였다.

 

 

적 전차를 향해 육탄공격 하는 모습을 담은 삽화


 

비록 이러한 육탄공격이 미미한 성과밖에 기록하지는 못하였지만 보유한 274개의 폭탄마저 개전 3일 만에 바닥이 나자 더 이상 작전을 진행 할 수 없었고 이후 공중 정찰 등의 임무에 투입되었다. 반면 북한 공군은 개전 당일 서울 상공에 나타나 마음껏 유린하고 다녔다. 6.25전쟁 초기에 우리군 대부분은 북한군에 열세였지만 특히 공군은 이처럼 비교조차 민망한 수준이었다.

 

 

동체의 그려진 태극기를 자랑스러워하던 선배들은 맨주먹으로 나라를 지켰다.

 

 

하지만 당시 우리 선배들은 이를 비관만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조국이 위기에 닥쳤을 때 적진 깊숙이 돌진 하였던 L-4는 가냘픈 메뚜기가 아닌 우리공군의 자부심이었으며 자랑이었다. 당시,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서도 상황을 한탄만 하지 않고 조국을 지키고자 용감하게 출격하였던 공군의 창군 요원 분들께 무한한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그분들의 노고로 인하여 대한민국 공군의 초석은 단단히 놓일 수 있었던 것이다.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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