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한 때의 신화가 되어 가는 느낌도 들지만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대성공이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된 시대가 있었다. 관심의 초점은 도요타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거둔 대성공에서 비롯하였다.

 

 

해변에 좌초한 사카마키의 잠수정 HA-19



 

2차 세계대전 전이나 대전 후에도 구미 어느 나라에서도 일본 자동차가 선진국 시장을 석권하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었다전후에도 일본은 여전히 지금의 중국과 같이 값싼 상품을 만드는 생산과 마케팅의 후진국으로 여겨졌었다. 그랬던 도요타가 미국 시장에 진출한지 불과 한 세대도 되지 않아 미국 자동차 메이커 빅3를 위협하는 성장의 이면에는 묘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미국 시장 석권에 성공한 도요타의 경영층에 2차 세계대전 도발의 첫 탄을 미국에 날리려한 일본 해군 소위 출신이 있었다. 

 

그는 또한 미일 전쟁의 제1호 포로이기도 했다. 도요타의 성공을 생각하면 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일본 해군 항공대가 진주만을 기습하기 다섯 시간 전 진주만에 은밀히 수중 침투하여 미 전함들을 격침하라는 특명을 띄고 출격했던 미니 잠수정 다섯 척 중 HA-19정의 정장(艇長)이었다. 일본 잠수정들은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 보아 무척 하이테크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두 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두 발의 어뢰를 적재했다. 일본 해군은 적 함대 궤멸에 기습 항공대보다도 이 잠수정들의 역할이 더 크리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다섯 척은 한 척도 작전에 성공하지 못했다. 한 척은 침투 중 격침당했고 나머지는 실종되거나 나포되었다10명의 특공대원중의 한 명인 사카마키(酒卷 和男1918-1999)소위의 잠수정은 해변에 좌초되어 나포 되었고 사카마키 소위는 포로가 되었다.

 

 

사카마키 소위 - 일본 도쿠시마현 출신으로서 일본 해군사관학교인 해군병학교를 1940년에 졸업하였다.


 

그의 잠수정은 모함격인 일본 잠수함을 떠나면서부터 말썽을 부렸다. 자이로콤파스가 고장나서 제대로 된 침로(針路)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 책에는 미 구축함의 공격에 고장이 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잠수정은 진주만 안에 침투하기는 커녕 원을 그리면서 회전 항해를 하다가 산호초에 좌초되었다.

 

이를 발견한 미 구축함 Helm호가 포격을 해 잠수정은 파괴되고 두 승무원은 정신을 잃었다다시 정신이 든 그와 동료 승조원은 자폭장치를 가동시켰으나 이것도 말을 듣지 않았다사카마키 소위는 잠수정 밑으로 잠수해 폭파장치를 가동시켜 보려했으나 말을 듣지 않아 퇴함했다. 해변에 올라온 그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가 하와이 원주민계 미군인 데이비드 아쿠이에게 발견되었다

 

 

사카마키를 발견했던 데이비드 아쿠이

 


동료 승조원 이나카키 키요시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사카마키는 의식불명 상태로 포로가 되었고, 노획된 잠수정은 미국내 각지를 이동하며 일본군의 침략성을 규탄하는 홍보물이 되었다미군 병원에서 정신이 든 사카마키는 자신이 치욕적인 포로가 된 사실을 발견하고 머리를 침대에 박는 등 자결을 시도했다.

   

그러나 미군은 24시간 감시병을 배치하여 이를 방지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감시병의 눈길을 피해 담배로 몸에 불을 붙이며 자결할 기회를 노렸다. 

 

 

 

사카마키를 제외한 9명의 미니 잠수정 전사 승조원은 군신으로 추앙되었다.

   

  

 

 

하와이에 침투한 일본 잠수정 - 폭뢰의 압력으로 골격이 다 들어나 보인다.

 

 

그는 미국 본토로 후송되어 4년 가까운 포로생활을 했다죽음으로서 치욕의 포로생활을 청산하고자 했던 사카마키는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도 바뀌어 반전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포로가 된 일본병들에게 통역 서비스도 해주고 일본 군부의 호전성이 국가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도 역설하였다.

 

특히 굴욕감에 자살을 시도하는 많은 일본 군인들의 생각을 바꾸어 목숨을 구제한 업적이 커서 미군 당국자들에게 감사함을 전해받기도 하였다철저한 무사도 정신을 주입받은 일본 해군병학교(海軍兵學敎) 출신 엘리트 장교로서 이것은 실로 대단한 변신이었다.

 

사카마키의 포로 등록 사진 얼굴에 담뱃불로 자해한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는 전쟁이 끝난 1946년 송환되었다. 무사답게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그에게 주어지는 따가운 시선도 있었지만 그는 살길을 찾아 도요타 자동차에 입사해서 열심히 일을 했다그가 도요타 자동차에 입사하게 된 것은 그의 포로 생활에 대해 보도했었던 일본 주니치 신문의 기사가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도요타의 최초 승용차 AA형 - 1936년산 사실상 영국차의 복제품이었다.



일본의 경제가 부흥의 바람을 타면서 도요타 자동차의 사세도 일취월장했다능력이 있었던 사카마키도 진급을 거듭해서 본사 수출부 차장이던 1969브라질 현지 법인의 사장으로 취임하였다1983년 브라질에서 귀국한 그는 계속해서 근무하다가 1987년 퇴직하였다. 은퇴한 사카마키는 19998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는 포로 생활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전쟁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포로 생활에 관한 책은 1949포로 제1라는 제목으로 출판 되었다.) 잊혀진듯하던 사카마키는 사후인 2010년 일본 NHK TV 에 그의 특집이 소개되어서 일본인들의 시야에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생전에 미국에 물밀듯이 수출되는 도요타 자동차를 보면서 생활했던 그의 감회가 어땠었는지 궁금하다.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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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anghoseo 2014.03.06 0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요타는 방직기 제작기술로 주조, 가공기계 기술을 쌓아 자동차 제조를 시작해(1935년) 태평양 전쟁 때 육군용 트럭을 생산합니다.
    종전후 5년 뒤 한국전쟁 직전 찾아온 경영위기를 미군용 트럭의 대량주문으로 모면하기도 하고요.
    도요타는 현재 경차를 생산하는 다이하츠 공업, 트럭 및 상용차를 생산하는 히노자동차의 모기업이기도 하죠.
    스바루를 가진 후지 중공업처럼요. (그 후지 중공업의 대주주가 도요타이기도 합니다. 2000년대 중반 GM에 찾아온 위기 이후 말이죠.)
    참고로 혼다는 1급 전범기업인 나카지마 비행기라는 업체의 부품 하청업체였습니다.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좀 더 말씀드리자면,
    다른 회사들과는 달리 혼다는 나카지마 비행기의 해체 후 비교적 소박하게 자전거 사업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모터사이클을 만들고 그 기술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게 1964년입니다.
    그런데 혼다를 전범기업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게...
    나카지마 비행기 하청 업체 중에서도 정말 보잘 것 없는 기업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일본 극우 단체를 지원하는 기업 명단에는 혼다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나카지마 비행기 밑에서 꽤나 큰 규모를 자랑했던 후지중공업.
    즉, 스바루의 전신이었던 기업은 현재 1급 전범기업으로 분류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나카지마 비행기와 쌍벽틀 이루던 타치가와 비행기라는 기업이 있습니다.
    나카지마가 해군기를 만들었다면 타치가와는 육군기를 만들었던 곳입니다.
    그 곳의 기술자였던 두사람이 미국 GHQ의 강제 해체 후, 기술자들을 모아 만든 기업이 동경전기자동차이고...
    몇차례의 개명 끝에 프린스 자동차라는 이름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닛산과 합병이 됩니다.

    사실 타치가와는 또 다른 회사 성장에 엄청난 기여를 합니다.
    그게 '도요타 자동 방직기 제작소'의 자동차 부서에서 1937년 독립했던 신 회사 '도요타 자동차 공업 주식회사'죠.
    타치가와의 수석엔지니어가 도요타에 입사하며 도요타 크라운을 개발합니다.
    도요타 역시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겠군요.

  2. janghoseo 2014.03.06 0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고야 항공제작소를 예로 들겠습니다.

    타치가와는 육군전용 전투기를 만들었으나 그 규모가 나카지마에 비해 작았습니다.
    하지만 나고야 항공 제작소는 나카지마와 비등비등한 수준으로 쌍두마차로 여겨졌죠..

    제로센 전투기도 나고야 항공제작소에서 제작됩니다.
    이 '나고야 항공 제작소'를 엄청나게 주목해야할 이유가 반드시 있습니다.

    강제노역과 강제 성매매를 시켰기 때문이지요.
    나고야 항공 제작소가 어떤 기업과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게되면...

    미쯔비시가 튀어나오죠.

    지금도 이름만 살짝 바뀌어서 미쯔비시의 주력사업분야 중 하나입니다. 나고야 항공우주시스템 제작소라고 하네요.
    대부분의 일본 우주 발사체는 여기서 개발되고, 전투기 역시 여기서 개발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