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들은 독일 잠수함 유보트 U-519 함의 승조원으로서 세 번의 전투에 출동했었던 피터 페터센가 그를 인터뷰한 로저 스타인웨이에게 회고한 내용이다. 그가 하선하고 난 뒤 U-519 함은 그 다음 출동에서 격침되었다20살의 페터센이 U보트에서 근무하던 때는 1943년이었는데 이 무렵 연합군의 대잠 전술과 장비 등이 대폭 개선되어 U보트들이 공격은 커녕 오히려 도망 다니기 바쁜 때가 많은 U보트 황혼기였었다.

 

그는 농장에서 태어나 농기계 공장에서 기능공으로 일하다가 1942년 독일 해군에 입대해서 잠수함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다. 페터센의 디젤 엔진 경험을 중시한 독일 해군은 그를 프랑스의 생 나자르 잠수함 부대로 보냈다. 신병 숙소에서 대기하던 페터센은 1943817일 다음 날 로리엔 항에서 출동하는 U-518에 승함하라는 배치 명령을 받았다.

 

그는 인터뷰한 로저 작가에게 첫 유보트 배치가 어떠했는가를 회상한다. 잠수함에 승함 즉시, 부서와 위치를 배정받았고, 이로써 무려 4개월간의 항해에 나서게 되었다.

 

"내가 처음 한 것은 면도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지요. 잠수함에는 식수가 절대 부족하여 면도할 물마저 아끼고자

모두 수염을 기르고 있었어요."

 

그가 첫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며칠 후 면도를 하고 잠수함에 승함하자 당직병은 그를 몰라보고 배에 오르지 못 하도록 하였다.

 

 

 

U보트 내부의 사령탑 (지휘실)

 

 

Q. 배의 생활은 어떘습니까?

 

A. 매우 더웠어요. 수상 항해를 할 때는 디젤 엔진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잠항하는 동안은 전기 모터를 사용하였지만 열기는 그대로 실내에 남아 있었습니다. 함내의 공간은 매우 작았어요. 공간은 모두 보급품 보관에 이용되어야 했어요. 배안의 냄새도 매우 안 좋았습니다.

 

수병들은 4711이라는 악취 제거 향수를 지급받았지만 사용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사용해봐야 효과도 없었고 귀환 후 여자 친구한데 주는 것이 환심을 사기에 좋았지요.

  

Q. 첫 번째 출동은 어땠습니까?

 

A. 첫 번째 항해는 플로리다 해협을 지나 멕시코 만으로 들어가 초계를 하고 귀환하는 것이었습니다. 1943년은 잠수함 작전이 매우 힘들어지기 시작했었습니다. 연합군의 대잠 능력이 대폭 확대 되었기 때문입니다. 출동하였던 많은 잠수함들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우리 배의 함장은 프레드리히 빌헬름 비스만 대위였는데, 그는 적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우리 U보트는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아미 근해에서 미 초계기를 만나기도 했었고 플로리다 해협에서 미군의 초계함을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U보트는 긴급 잠항으로 위기를 모면했지요. 다행히도 적의 출현을 예고해 주는 청음 장치가 우리 배에 장치되어있었습니다.

 

적함의 프로펠러 소리를 30마일 밖에서도 잡아내서 우리에게 접근하는 위협적인 존재를 미리 알 수가 있었어요또 적이 쏘는 레이더파를 감지하는 장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적함이 우리를 레이더로 탐색하면 우리도 동시에 알 수가 있어서 미리 대비를 할 수가 있었지요. WANZE라는 장비인데 성능이 상당히 우수했어요.

 

 

U-보트의 수상 전투

 

 

 

Q. 멕시코 만에서의 작전은 어땠어요?

 

A. 사냥할 목표들은 많았지요. 하지만 공격은 모두 실패했어요. 발사한 어뢰들이 명중해도 폭발하지 않았거나 코스를 벗어났어요. 게다가 수온이 수심에 따라 달라서 적 선박 청음 탐지에 장애가 자주 발생했습니다. 청음기가 제대로 작동해서 적 선박을 탐지할 때도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어뢰를 명중시키기 힘든 위치에 있었기도 했고요.

 

우리 U보트가 적 선박에 어뢰를 발사하긴 여러 번 했지요. 그러나 명중을 한 것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한 번은 화물선에 어뢰 네 발을 발사했는데 한 발도 명중하지 않았습니다. 비스만 함장은 어뢰의 심도가 너무 깊게 설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한 척도 격침하지 못했지만 우리한테 좋은 점도 있었어요.

 

미 해군은 우리 U-518이 멕시코 만에 나타난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한 척이라도 격침되었더라면 대잠부대가 우리를 강도 높게 추적했을 것입니다.

   

Q. 그러면 첫 출동의 성과는 어떻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A. 글쎄...말했다시피 격침한 전과는 없었어요. 하지만 귀환하던 도중 대서양에서 경항공모함을 만났어요. 비스만 함장은 어뢰를 8발이나 발사했지만 모두 빗나갔어요. 어뢰 중 일부에 기계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비스만 함장의 어뢰 뇌격 솜씨는 나쁘지 않았어요.

 

비스만 함장이 여덟 발이나 발사하고도 한 발도 명중할 수가 없었다는 것은 믿기 힘든 노릇입니다다음 날 우리는 미 해군 구축함에게 발견되었습니다. 이 구축함 하나만이 아니었죠. 우리 U 518을 발견한 그 녀석은 근처에 있던 다섯 척의 동료 구축함들을 몽땅 불러 들여 우리를 추격하였습니다.

 

 

U-boat

 

 

참 운이 무척 없었습니다. 미국 구축함 여섯 척은 잠수함 사냥 편대를 갖추고 폭뢰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폭뢰가 폭발할 때 마다 잠수함의 선체가 뒤흔들렸고 전등들이 깜빡거렸습니다. 함체에 균열이 날 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만약 균열이 생겼으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잠수 한계 수심은 약 700피트(230미터) 였는데 우리는 수압이 높은 한도까지 최대한 깊숙이 잠수한 상태라 조그마한 균열도 함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가 있었어요. (계속)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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