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92세의 나이로 병든 몸인데도 후배들을 위해서 임무를 다하고  갑자기 작고한 압록강 진격 화기 중대장 고 최종석 중령을 추모하는 글이다.-

 

 

지난 1025일 가을이 짙어가는 철원 6사단 7연대에서 (초산 부대) 압록강 진격 기념식 있었다김용배 중령의 지휘하는 7연대의 1대대는 맹렬한 속도로 북진, 19501026일 평북 초산을 점령하고 당일로 압록강변 신도장에 도달했었다. 이날 행사는 이를 기념하는 것이었다.

 

 

사천 항공 우주 박물관에 전시되던 김일성 승용차. 전공을 가로채서 영웅으로 활동한 임모씨가 주장한대로 노획자가 6사단 수색대로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전의 행사와 다른 점이 있었다. 행사후 연대장실에서 압록강 진격 참전 용사들을 대상으로 증언 청취 미팅이 있었다. 전쟁기념관에서 내년 봄에 전시 계획이 있는 김일성 승용차에 관한 것이다이 조사를 위해서 서울의 전쟁기념관 양창훈 유물 팀장과 전사 편찬 연구소 남정옥 박사 전문가 두 분이 이 먼 철원까지 와서 하룻밤을 묵고 행사에 참석하여 참전용사들을 면담했다.

 

김일성 승용차를 노획한 진짜 영웅들이 과연 누구였는가 하는 진실을 캐기 위한 조사의 일환이었다7연대 1대대는 초산으로 북진중인 1022일 청천강변에서 남침의 원흉 김일성이 타던 소련제 고급 승용차를 노획했었다. (이 블로그에서 김일성 승용차 노획했던 1대대 선봉의 1 중대장 이대용 장군이 기고했었던 청천강변에 팽개친 김일성 승용차라는 글을 올렸었는데 보신 분들이 있을 듯하다.) 

 

그러나 진격에 바빠 후속 부대에 승용차의 처리를 부탁하고 계속 북진했었는데 고향 방문차 7연대 구역에 들른 2연대장 함병선 대령이 이 차를 가져다가 친분이 있었던 대통령 경호실장 곽영주를 통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진상하였었고 이 대통령은 이 차를 교통 사고로 숨진 8군 사령관 워커 중장 부인에게 증정했었다.

 

여러 가지로 무리였었던 이 선물은 1년 후 미국 자동차 콜렉터에게 팔려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1980년대 초 한국으로 돌아왔다한국의 공식 전사에는 김일성 차를 이 대통령에게 바친 함병선 2연대장을 김일성차를 노획한 공로자로 기록해 왔다. 

 

김일성 승용차가 노획된 청천강가

 

 

 

 

김일성 승용차가 사천의 항공 우주 박물관에서 전시중이던 2000년대 초부터 대구 거주 임모씨라는 분이 자기가 김일성차를 노획했다고 주장하면서 여러 곳에 강연도 다니고 언론들과 인터뷰도 했었다김일성 승용차가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그 분은 전쟁기념관 담당자에 전화를 걸어 자기 부대가 노획한 것이니 전시 설명문에 이를 명기해달라고 요구한 강심장을 보였다.

 

6사단 사단 수색중대에서 근무할 때 김일성 승용차를 노획했다는 것인데 진짜 노획자인 7연대 1 대대 생존자들이 이를 알고 격분하여 대면을 요청하자 기겁을 하고 거절했었다그런데 두어달후에 (임모씨와 연관이 있는 듯한) 김일성 승용차 노획 주장자들이 두 사람이나 추가로 나타나 전쟁 기념관과 전사 편찬 연구소를 돌아다니며 여러 소리를 늘어놔서 관계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마침 철원 7연대 행사에 참전 용사들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은 관계 전문가 두 명이 진상을 알고자 철원까지 올라왔던 것이다. 7연대 참전 용사들은 지난 그 긴 세월 김일성 승용차를 노획한 공로를 국가가 잘못 기록하였거나 가로채는 인간들이 있었어도 그냥 모르는체하고 웃고만 말았었다.

   

그러나 이미 대부분의 참전 용사들이 세상을 떠나고 남은 소수의 장병들이 더 이상 입을 다물고 있으면 국군 최강 7연대 후배 장병들의 자랑스런 역사는 망각되고 만다는 생각에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었다. 최강 연대의 산 증거인 이 차의 노획 부대를 정확히 해서 그 자랑스런 전공을 후배들에게 넘겨주겠다는 노선배로서의 정성이었다.

 

7연대에서 증언 미팅이 있다는 소식이 있자 김일성 승용차 노획에 참가했었던 참전 용사들은 이 증언 미팅에 전원 참석하기로 하고 연락을 취했다참석 가능한 참전용사래야 거의 작고하고 불과 다섯 분이었다그중 두 명은 사정상 이 기념식에 참석하기가 곤란하여 몇 년간 7연대 기념식에 가지를 못했었다한 분은 수원에 거주하는 신영진씨(이등중사)로서 전쟁동안 기관총 반장으로 7연대 1대대가 싸운 모든 전투에 다 참가한 역전의 용사였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철원에서 11시에 열리는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은 사실 80세 노인에게 무리였다그러나 이번에는 선배 서근석 중령의 독려로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서울을 거쳐 철원 행사에 참석했다참석이 힘든 분이 또 있었다. 김일성의 승용차를 노획하고 압록강으로 진격해간 선두 1중대를 바로 뒤에서 후속했었던 화기 중대 중대장 최종석 중령이었다. (당시 중위)

 

화기 중대는 박격포로써 1중대를 화력 지원하며 북상했었다. 그때 16포병대대의 1개 포병 중대가 7연대를 후속했었지만 노획차량으로 전부 차량화한 7연대를 바짝 따라 붙지 못해 거리를 두고 따라 오느라 선두 1중대는 81mm 포의 지원만 받으며 북한군 오백룡 여단을 격파하고 압록강에 도달했었다그러니까 최종석 중령은 압록강 진격이나 김일성 승용차 노획에 간접적인 공로가 큰 분이었다. 참전 용사중에 최고령자로서 90세가 넘었다.

 

---------------------------------------------------

이 분의 간단한 이력 소개를 추가한다. 최종석 중령은 일본에서 학교를 나오고 일본군에 징병을 당해 복무하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하였다. 귀국 후 강원도 삼척에서 호국군이라는 예비역 장교 양성기관에서 활동하다가 전쟁이 터지자 현역으로 소집되었다.

 

초급 지휘관들의 소모가 극심했던 낙동강 전선에서 7연대 1대대 3중대장이 총상으로 후송되자 3중대 지휘를 맡아 낙동강 전선 화산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고 북진 때는 중화기 중대장을 맡아 잘 싸웠었다중령까지 진급하고 전역했으나 민간 생활에 적응력이 없어, 경제적으로는 별로 윤택하게 살지는 못했었다고 부인이 회고했다.

---------------------------------------------------

 

나는 최종석 중령을 삼 년 전부터 그 이름을 들어 알고는 있었다. 최종석씨 중대에서 중대장 연락병으로 복무했었던 참전용사 손영준씨를 통해서 였다.

 

 

1987년 연대 전사 '초산 전사'편집에 증언하기 위해서 다 모인 역전의 7연대 용사들 - 여기서 김일성 승용차가 7연대 1대대가 노획한 것을 확실히 했다. 앞줄 중앙 색안경쓴 임부택 장군 바로 뒤가 최종석 중령(원안)이다.

 

그때 최종석씨는 중병 환자로서 병석에 누워 앓고 있어, 바깥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연초에 다시 소문을 들으니 병세가 다소 호전되어 조금씩 걸음을 걷는다고 했다. 여름에는 또 병세가 약간 더 좋아져 간단한 바깥출입을 한다는 말도 들렸다.

 

이번 7연대 압록강 진격행사 때 정훈과장 이효웅 대위의 부탁으로 내가 직접 참석 가능성을 묻는 전화를 해봤다. 그런데 병자라는 분의 목소리가 예상외로 뚜렷했다.

 

"건강이 별로 안 좋으실텐데 오실 수 있는지?"

"네! 갈 수있습니다. 가겠습니다!"

"행사 후 증언 청취의 미팅이 있는데 수고 좀 해주세요."

 

라고 했더니 이미 알고 있는듯했다.

 

"네. 어떻게 해서라도 가겠습니다!"

 

라고 힘있게 대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대용 장군의 전갈을 받고, 이미 꼭 참석하겠다는 확답을 했다고 한다행사 며칠 전에 7연대에 부인과 같이 가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부인이 부축해야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그 분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 7 연대는 최종석 중령이 여유를 가지고 행사 전날 방문하게 하는 배려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7연대의 정성은 지극하였다. 6사단 영빈관도 있었지만 인사과 황성하 대위가 최종석씨의 건강상태를 생각하여 이동 거리가 짧은 부대 바로 옆 포병 여단의 영빈관인 승포회관을 얻어 쉬게 했다는 것이었다최종석 중령은 부인의 부축을 받고 의정부까지 전철로 와서 7연대 차로 철원으로 올라와 하루를 푹 쉬고 다음날 압록강 진격행사에 참석하였다행사 당일 최종석 중령을 만나 본 즉 몹시 안색이 안 좋아 보였고, 부인이 부축해주고도 지팡이에 의지하고 걸어야 했다.  

 

 

왼쪽부터 고태남 연대장, 이대용 장군, 최종석 중령 부인, 최종석 중령. 그리고 한 의자 건너 신영진 이등중사와 서근석 중령, 등을 보이고 앉은 분이 납북되어 가다가 1대대 1 중대에 구출되어 압록강까지 동행했었던 간호 여고생 정정훈 여사다.(정정훈 여사도 몸이 불편한데도 아들과 딸의 부축을 받고 증언하러 참석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력도 무척 나빠져서 불과 수 미터 앞의 사람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한다첫 눈에도 무리하게 방문했음을 알 수 있었다행사 참가 내빈들을 다 돌려보낸 뒤에 고태남 연대장실에서 김일성 승용차 노획에 대한 증언 미팅이 가졌다.

 

전쟁 기념관 양창훈 팀장과 전사 편찬 연구소의 남정옥 박사가 질의하였고 참전 용사중에서는 중대장이었던 이대용 장군과 압록강 진격당시 소대장이었던 서근석 중령이 주로 발언했다평소 과묵했다는 최종석씨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동감을 표시할 뿐 시종 괴로운 표정이었다. 앉아 있으면서도 지팡이에 의지할만큼 불편해 했다. 단 한번 내가 발언을 요청하자,

 

"장군님이 하시는 말씀이 다 옳아요."

 

하고 전적인 찬성을 표했었다점점 시간이 깊어지자 부인은 남편이 불편해하는 것을 알아채고 먼저 가겠다고 양해를 구했다그 길로 이효웅 정훈관이 의정부 전철역까지 모셔다 드렸지만, 왠지 그 앉아 있기도 불편한 모습에서 불안감이 들었다.

 

며칠 뒤에 이대용 장군으로부터 장군과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최종석 중령 부인이 "오라버니 덕분에 전방 가서 호강하고 왔어요." 라는 말로 7연대의 배려에 감사한다는 말을 듣고 최종석 중령이 괜찮은 줄 알았다그러나 한달 뒤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최종석 중령은 힘들게, 7연대에 다녀오기는 했지만 원기를 되찾아서 혼자서 근처 산보도 곧잘 다녀었다는데, 이날도 혼자 외출했다가 눈이 어두워서 달려오는 트럭을 피하지 못하고 그만 사고를 당해서 사망했다는 것이다.

 

7연대 방문 뒤 꼭 한 달만의 일이었다후에 들었는데 그 분의 부하 손영준씨는 빈소에 들어오자마자,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최종석 중령은 10대의 어린 학도병으로 참전한 손영준씨를 연락병으로 두고 친동생처럼 아꼈고 목숨이 경각에 달한 전투의 위기 속에서도 손영준씨를 구출해내기도 하였다. 그 전우애가 60년간이나 계속되었으니 놀라울 뿐이다.

 

최종석 중령의 힘든 방문 때도 큰 배려를 했었던 7연대 고태남 연대장은 이번에도 이재수 연대 주임원사와 1대대 조규진 원사을 조문 파견하였다. 7연대 후배들의 자랑스런 전공을 찾아오기 위해서 마지막 봉사를 했던 선배를 모셔드리는 지극한 예의를 다한 것이다.

 

병약한 몸에도 증언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전방 철원까지 힘들게 방문했었던 그 분의 인생 마지막 군부대 방문을 지켜보았던 나는 가슴이 뭉클할 수밖에 없었다90이 넘은 고령에 병약했었던 최종석 중령은 자기의 최후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후배들의 전공을 찾아주기 위해서 증언 미팅에 꼭 나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몸이 따르지 않았음에도 이를 수락했었을 것이다되풀이해서 말하자면 63년전 민족의 북진 명령을 받고 압록강을 향하여 맹진격하던 그 시절의 임무 완수의 사명감이 되살아났었기에 전방 그 먼 곳까지 왔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고전이 된 유명한 영화 실버스타 스타론의 "람보" 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말이 기억난다. 월남에 비밀 억류 된 미군 포로들을 구해서 헬기로 탈출한 람보가 자기 뒤에서 배신을 때린 상관의 목덜미를 잡았으나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큰 나이프로 책상에 박으면서 웅얼거리던 말

 

"Mission accomplished!(임무 완료!)"

   

만약 저 세상으로 떠난 최종석 중령이 전쟁 기념관에 김일성 승용차가 전시되고(2014년 봄 예정) 노획한 진짜 영웅들이 7연대 1대대 장병들이라는 사실이 설명문에 자랑스럽게 전시된다면 저 세상에서 만족스런 표정으로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감상적인 생각을 해본다.

 

"중화기 중대장, 임무 완료!"

 

 

국방부를 정기 방문하는 7연대 장병들 - 빨리 김일성 승용차가 전시되었으면 한다.

 

 

최종석 중령은 군 시절 모았던 각종 유물이 네 박스나 남기고 떠났다전쟁기념관에 기증이 되어 매달 정기 방문하는 7연대 후배 장병들을 만나게 하는 대화가 오고가고 있으니 잘 되었으면 좋겠다.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1. 정환욱 2014.01.29 1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울프독님 글 잘읽었습니다~^^ 글읽고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임모씨의 거짓 주장을 인터뷰한것과 그 내용들을 퍼나른 블러그가 많이 있네요.. --;; 어서 빨리 진실이 널리 알려졌으면 합니다 울프독님 추운날씨 건강 주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