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1905년 러일전쟁을 승리하여 제국주의 클럽에 가입한 후 조선, 만주, 내몽골을 거쳐 중국 대륙으로 서서히 그 침략 지역을 넓혀가고는 있었음에도 기존 서구의 열강들은 일본을 계속 얕잡아 보고 있었다. 서구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말도 안되는 서구 우월론과 동양인은 저열하다고 인식하는 지독한 편견 때문이었다.

 

 

 

러일전쟁을 통하여 일본은 제국주의 클럽에 가입하였다.

 

 

 

 

비록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 문물을 적극 받아들여 급속히 국력을 발전시키고 이를 발판으로 대외 팽창을 시도하고 있었으나 영국, 프랑스, 미국과 같은 서구 열강들은 이를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의 국력이 자신들의 수준과는 엄청나게 뒤 떨어진 것으로 지레 폄하였기에 낙후된 극동지역에서 그저 골목대장 노릇을 하려는 정도로만 여겼다.

 

 

 

서구 열강은 일본을 계속하여 얕잡아 보고 있었다.

 

 

오늘날 일본은 엄청난 경제력과 이와 관련된 기술력, 산업 생산력에서 세계적인 국가지만, 당시 서구가 이렇게 아래로 보았던 이유는 단지 편견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록 괄목상대한 발전을 하고는 있었음에도 1930년대 이전에 일본의 산업 능력이나 기술 수준이 오늘날만큼 세계를 선도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은 나름대로 국력을 키워 대외팽창을 가속화 시키고 있었다.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을 환송하는 모습)

 

 

 

 

또한 당시 극동지역은 말 그대로 세계의 변방이었다.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에서 워낙 멀리 있던 이곳에 대한 서구인의 관심이 그다지 큰 편도 아니었고 교통이나 통신도 나빠 일본에 대해 서구인들이 가지거나 얻을 수 있는 정보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서구인들 스스로 일본의 잠재능력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였다.

 

 

 

 

1930년대 일본의 전함들인 야마시로, 후소, 하루나

 

 

 

 

하지만 군국주의 정책을 적극 펼쳐 대외 팽창을 노리던 일본은 이러한 무관심과 편견의 틈새를 이용하여 나름대로의 군비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섬나라인 특성을 최대한 살려 강력한 해군력 확충에 박차를 가하였고 그 결과 1940년대 초 일본은 시나브로 미국, 영국과 더불어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1930년대 건조 된 중(重)항공모함 소류

  

 

 

더욱이 전 세계 식민지 경영을 위해서 해군력을 분산 배치한 영국이나 대서양을 좀 더 중시하는 정책을 펼쳤던 미국과 비교 하였을 때 당시 태평양만 놓고 본다면 이곳에서 일본의 해군력을 능가할 나라는 없었다. 이러한 일본 해군이 세계 해군사에 선도적인 업적을 남긴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항공모함의 건조와 운용과 관련한 부분이다.

 

 

 

 

일본은 항공모함 운용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 전용함 호쇼)

 

 

 

일본은 기존에 있던 군함을 개조하여 항공모함을 만들었던 영국이나 미국과 달리 1922년 세계 최초로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 설계한 호쇼를 건조하여 운용하였다. 또한 뿌리 깊은 거함거포주의를 신봉하여 무지막지한 전함과 순양함을 보유하였음에도 별도의 항모함대를 편성하여 원거리 전략타격을 나가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전에 응용하기도 하였다.

 

 

초기의 함상 전투기 A4N1

 

 

 

이것은 항모를 단지 전함위주로 구성된 함대의 항공 전력을 운용할 수 있는 보조 수단 정도로만 생각하던 미국이나 영국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던 것이었고, 태평양 전쟁 초기 일본 승리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항모의 효용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던 일본은 당연히 여기에 탑재할 함재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계속)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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