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사에서 액션 영화의 히어로와 같이 전투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했던 특수전  파이터는 누구일까? 내가 임의대로 설정한 파이터라는 단어는 의미상 좁은 범위를 가진다여기서 정의하는 '파이터'란 단어를 달리 표현하자면 영화나 전자 게임에서 설정하는 대부분 주인공 영웅들의 이미지와 꼭 같이 일치한다.

 

 

특수전 영화의 고전이 된 실버스타 스타론의 ‘람보’나 아놀드 슈왈체네거의 ‘프레데터’의 주인공들이 그 대표적 인물들이다.

 

 

명파이터는 정규전처럼 부대 대 부대의 집단전에서 용감하게 싸운 전쟁 영웅이라기보다는 특수전의 달인(達人)을 의미한다. 이 특수전은 작전의 난이도(難易度)가 아주 높고 따라서 실패의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대단히 높은 전투 기술도를 필요로 한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진에 뛰어 들기 때문에 파이터의 대담성과 전투 감각이 보통 사람을 뛰어 넘어 거의 초인적인 수준이어야 한다. 한국전이나 월남전의 전사를 찾아보면 육해공군 해병대 각군에서 수많은 전쟁 영웅들이 명멸(明滅]하듯 나타난다.

   

그러나 나의  주관으로 선별 해본 특수 작전의 명파이터 스펙에 가장 잘 맞는 인물은 국군이 아니라 경찰에서 발견된다그리고 사족으로 미리 말해두지만 이렇게 철저히 망각된 한국전 영웅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다. 전투가 주요 업무에서 빠진 그의 본가 경찰에서 특별히 챙겨 주지도 않았었고, 그렇다고 이웃 사촌격인 국군에서도 그의 전공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도 않았었다.

  

소개하는 명파이터는 1949년에 경찰에 투신하여 19612월에 퇴직한 경남 산청경찰서 사찰 유격대장 강삼수 경위다. 그의 고향 경남 산청을 가보면 현지 나이든 주민들 사이에 그의 이름은  옛 전설에 나오는 영웅의 이미지와 함께 떠돌고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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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유격대는 당시 일선의 경찰서에서 대공업무를 맡고 있던 사찰과(지금의 보안과)에서1-2개 분대 규모로 직할하던 특공대로써 공비 토벌의 특수 작전을 맡아서 했다사찰 유격대는 경찰서 경비과에서 관할하던 전투 경찰들과는 다르게 사찰과에서 독립 운영하였었다. 남한의 공비 최고 두목 이현상을 사살했다고 알려진 경찰 부대도 김용식 경사가 지휘하던 사찰 유격대였었다만약에 한국전 당시의 전투 경찰사를 대대적으로 다시 쓴다면 사찰 유격대는 별도의 장을 마련해서 자세히 기술하고 평가해야 할만큼 그 공로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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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유격대는 오늘날 경찰 특공대에 가장 유사하고 강삼수 경위는 한국 경찰 최정예 특공대장에 비유할 수가 있다. 강 삼수 경위는 사찰 유격대장뿐만 아니라 공비들의 주요 습격대상이던 산청군내 오지 지서나 주둔소 소장을 하면서 내습한 공비들과도 전투를 겪었었다. 

 

여러 독자들에게 한국전의 최고 명파이터가 국군이 아닌 전투 경찰에 있었다는 사실은 다소 의외일 것이다. 북한군이나 중공군같이 중화기로 중무장한 정규군을 상대하지 않았으니 그런 전과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가능도 하다공비라하면 거지나 다를바 없는 복장에 식량 도둑질하고 다니던 한국 전쟁 후반기부터 오합지졸(烏合之卒)화 해버린 집단들을 상상하겠지만 강삼수 경위가 상대한 공비들는 보통 공비들이 아니다.

 

이들은 실전을 풍부하게 겪은 강한 부대들이었다. 낙동강에서 미군들과 싸우다가 인천 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막히자 중화기까지 가지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공비가 된 북한군이 그 하나였었다남쪽 공비들의 총사령관 이현상이 가장 신임하던 이영회(李永檜)가 지휘하던 최정예 부대가 또 다른 하나다. 이영회는 여순 14연대 반란 사건의 주모자로서 지리산으로 도주했었던 반란군을 이끌고 있었다.

  

이 부대는 정규군 훈련을 받았었고 여러 번의 토벌전을 당하면서 혹독하게 단련받아 실전에 매우 강했었다. 순천 역전의 깡패 출신이었다는 이영회는 경찰들을 특히 미워하여 경찰을 포로로 잡으면 대부분 잔인하게 학살해버렸었다지리산 주변 전투 경찰들은 그의 부대와 교전하기를 꺼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공비들의 지역을 은밀 침투하여 이들을 괴롭히던 강삼수 경위를 독한 이영회조차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1951911일 산청군 새롭재에서 강삼수 부대의 매복조에게 당해 큰 피해를 입었었던 이영회는 애 같은 짓으로 그에 대한 증오감을 들어냈다. 전투 경찰사는 이런 일화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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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 금서면 매촌 부락에서의 보급 투쟁을 마치고 소굴로 돌아가던 공비 57사단장 - 정규 사단이 아니라 이영회 부대를 가리킴- 이영회(李永檜)는 밤머리재에 올라서 마을을 향해 


"삼수 요놈아! 뽈갱이 여기 있다. 잡아봐라! 잡아 봐!"  


"삼수야! 헛다리 짚었다고 슬퍼 말아라! 이 요사할 놈아!" 하고 외쳐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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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삼수 경위의 존재에 대해서 내가 그 이름을 접해본 것은 오래전이었지만 그 후 그 분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얻을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참전경찰 경우회 김을로 사무총장



김을로 선생이 경찰이 이런 중요한 전투에서도 이겼다는 증거로 보여 준 함안 남강변 전투 승리 표창장. 이 전투에서 미군의 화력지원을 받은 경찰이 북 정예 4사단의 대병력을 격파했다.



얼마 전에 참전 경찰 경우회의 사무총장님이신 김을로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김총장이 강삼수 경위와 같은 지서에서 지서장과 차석의 막역한 사이로 어깨를 같이하고 싸웠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두 사람 가족은 같은 집에 셋방을 얻어서 살았던 터라 부인끼리도 아주 가깝게 지냈다는 사연을 듣고  김을로 선생게 간청하여 얻은 도움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2편 계속)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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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atortuga 2013.11.27 0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울프 독님, 그간 안녕하십니까?
    매우 흥미있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다음 편도 많이 기다려집니다.

  2. 의정부순경 2014.05.05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하신분이시네요. . ㅋㅋ

  3. 이건희 2014.05.31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 우리외할아버지이신대 진짜유명인사시네 오늘 대전국립묘지로 이장하셧는대

  4. 울프 독 2014.06.01 1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오늘 추도사 하던 저 보셨지요. 어머님이 눈물 흘리시던데--
    계속 써가겠습니다.

    • 강지윤 2014.06.01 2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생님 어제 고생 많으셨습니다.
      강삼수경위님 큰손녀입니다.
      이렇게 많이 힘써주신데 너무 감사합니다.
      큰손자녀들인 저희가 발벗고 뛰어다녔어야 했던 일인데 말입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는 핑계아닌 핑계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죄송스런 마음이고 김창원 선생님께 너무도 감사드린다고 늦으나마 인사글올립니다. 어제는 정신없이 지나가버려 제대로 인사도 못드려 기억도 잘 안나시겠습니다만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많이~부탁드리겠습니다.....*^^*

  5. 우희영 2014.06.05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전무후무하신 유공자를 생전에 국가가 홀대한 것에
    가슴이 저미도록 아픕니다.
    혼백이라도 현충원에서 편히 영면하시길 바라겠고요.
    당시 부하였던 분이 살아계시다니
    그 전공이 잊혀지기 전에 책으로 출간되어
    후세에 생생히 전해졌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6. 전진우 2014.06.05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전이라 부르지마시고 6.25 남침전쟁이라 하시죠 한국전 이라 함은 누가 먼저 침략 했는지도 모르고 명칭이 종북들이 만든거죠. 한국전이라 하지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