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산천 하류에 걸린 임월교. 문산쪽에서 본 모습임. 간첩들은 오른쪽 하류로 부터 침투해와서 다리 아래에서 쉬다가 발각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 시골 농가 집 울타리에는 개들이 출입하는 개구멍이라는 개 전용 출입구가 있었다울타리가 볏짚으로 되어 있어서 개가 코를 들이 밀면 대개는 개가 볏짚 사이로 통과할 수가 있다이렇게 만들어진 구멍으로 개가 수시로 출입하면 뻥 뚫린 개구멍이라는 것이 생긴다


물론 집안 개구장이들도 이 개구멍을 바깥 출입을 위해서 개들과 같이 공용하기도 한다.(그래서 개구장이라고 부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남의 집 앞에 버린 아기를 옛말에 개구멍 받이라고 부르던 명칭도, 잘 사는 부잣집 개구멍으로 아기를 넣고 유기 했던 것에서 유래한다.

 

나의 어린 시절, 동네에 광견병에 걸린 미친개가 출현했었다. 붉은 눈에 게거품을 물고 골목을 돌아 다니는 그 개를 보고 동네 형들이 저 놈 조심하자, 미친 개다!” 했다. 나는 집에 들어와서 할머니에게 동네에서 미친개를 보았다고 하자 할머니는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할머니는 즉시 집에서 일하는 머슴 아저씨들을 불렀다.


여보게들, 미친개가 나타났다네. 개구멍을 다 막아버리게나!”


집에서 키우는 개가 세 마리나 있어서 개구멍이 여러 곳에 있었다. 머슴 아저씨들은 먼저 개들을 묶어 두고 새끼줄로 바지 터진 곳 기우듯 개구멍을 다 막았다할머니의 용의 주도함은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미친 개가 우리집 개 냄새를 맡으면 구멍을 열고 들어올지 모른단다."

 

할머니는 낫을 가지고 가시가 무성하게 자란 탱자나무 가지들을 베어다가 개구멍 입구마다 서너개 씩 묶어놓았다. 그 커다란 가시들을 보면 어느 미친개도 들어올 생각이 싹 가셨을 것 같았다내가 어울리지 않게 어린 시절 간첩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북한의 간첩 침투사건이 날 때마다 그들이 마치 광견이 개구멍을 노리던 일화를 생각나게 했다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북한은 줄기차게 남한에 간첩을 내려 보냈었다숱한 남북의 젊은이들이 죽은 이 침투들에서 북한 쪽은 항상 광견처럼 남쪽의 빈 곳을 노리는 개구멍 침투 전법을 썼다는 사실이다휴전선에 철책선을 설치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북한 공작원이 바로 철책 너머 후미진 곳에서 호미와 야전삽으로 며칠간 밤마다 땅굴을 파고 통과 한 사실은

이미 명실상부한 사례 일 듯하다.


임월교 - 간첩 침투 후 재건축했다고 한다.

 

 

1983619일 새벽 두시가 한참 넘어 세시가 가까워 올 무렵 문산에서 남쪽으로 빠지는 대로의 문산천 위에 걸린 임월교위에서 보초를 서던 병사는 다리 아래에서 간헐적으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그는 다리 아래에 귀를 대고 집중해서 소리를 기다렸다.

 

그가 다리 위에 서있던 문산천은 바로 전면의 어둠속에 흰색으로 보이는 임진강과 직결된 샛강이었다. 문산천은 몇 년 전 범람하여 문산 읍내를 물바다로 만든 하천이다.

   


임월교 주변,문산쪽에서 본 광경- 우측은 침투 차단 수중 철책


임월교는 임진강에서 1킬로 정도 떨어진 문산읍 주택가 인접지역으로 문산천이 임진강에 합류되기 직전의 지점인만큼 간만믜 차가 심해 물이 들고 날 때의 수심이 1.5미터 -2미터 가량 차이가 나는 곳이었다초병은 다리 아래에 귀를 바짝 대고 수상한 기척을 찾았다. 분명 인기척이었다희미하지만 짧은 사람 목소리 같은 소리도 들려왔다초병은 즉시 소대장에게 보고했다. 달려온 소대장은 다리 아래에 귀를 기울이고 기척을 살폈다. 분명 사람의 목소리 같은 것이 기척 속에 섞여 있었다.

 

당시 신문은 두 사람이 들은 소리 중에 "신중! 또 신중!" 이라는두목의 소리도 있었다소대장은 이미 북한 간첩들의 수중 침투 가능성에 대해서 충분한 교육을 받은 바 있었다다리 밑에 와 있는 인간들은 임진강 하류에서 밀물을 타고 이곳 샛강인 문산천으로 스며 들어온 간첩들이었다. 소대장은 수류탄 한 발을 꺼내서 안전핀을 빼고 다리 아래로 던졌다.

 


간첩들이 헤엄쳐 들어왔던 문산천 하류. 멀리 자유로 다리가 보인다. 그 바로 너머가 임진강



간발의 사이를 두고 폭음과 함께 물보라가 사방으로 퍼졌다.이 폭음과 함께 처절한 비명도 울려 퍼졌다두 사람은 물론 소대원들은 합세해서 다리 아래의 강 주변에 수류탄과 소총을 가했다발사 된 총탄만 2,000발이 가까웠다한참의 상황이 끝나고 잠시 정적이 있은 엄호하에강으로 뛰어든 수색조가 두 구의 간첩 사체를 회수했다.회수된 간첩들은 서로의 배낭을 긴 끈으로 연결된 사실이 발견되었다.


긴 수중 침투 중에 서로가 낙오되지 않도록 등에 맨 배낭들을 끈으로 연결했던 것이다그런데 끈의 한쪽 줄이 칼로 자른 듯이 잘려있었다다른 한 명이 더 있었으나 수류탄이 작렬하자 얼른 연결 끈을 칼로절단하고 왔던 길을 되 집어 잠수 유영으로 도주했던 것이다. 임진강 주변에 비상이 걸리고 육군용 수색 보트가 출동했다.

 

   

문산천이 임진강과 만나는곳에 건설 된 자유로 다리/문산쪽에서 본 광경. 간첩들이 스며 들어온 문산천 하류가 있다.


보트는 강 하류 쪽으로 갈짓자 수색 운행을 하다가 필사적으로 헤엄을 치며 북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간첩을 발견하였다.짧은 총격 뒤 도주하던 간첩을 물에 갈아 앉혀 버렸다당시 신문은 마지막 간첩의 시체는 빠르게 빠져 나가는 서해안 썰물에 떠내려 가버렸다고 발표하였다.


문산천 주변 지도 - 붉은 색 칠한 곳이 상황이 벌어졌던 임월교. 그 남쪽에 얼마 전 월북 기도자가 사살되었었다.

 


대 간첩 대책본부는 또 이들 공비로부터 일제 잠수복 및 물갈퀴 2, 체코슬로바키아 제 기관 권총 3, 소음기가 달린 벨기에 제권총 1정등 모두 971386점을 노획했다고 밝혔다.

 

대 간첩 대책 본부 관계자는 이번에 침투한 무장 공비들은 그뭄날 밤이나 악천후를 이용해 침투하던 종전의 수법에서 벗어나 그믐이 아닌 때나 좋은 날씨에 침투하는 대담성을 보여 앞으로 아무 때고 침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내다 보았다.


체코제 vz-61기관권총. 7,80년대 간첩들의 필수 휴대무기


특히 이번 침투 공비들의 배낭 속에서 국군 육군 대위 계급장이 달린 장교 군복 1벌과 하사 복장 2벌이 나왔는데 대위 계급장은 엉성했으나 군복만은 겉으로 보기에도 국군 복장으로 착각할만큼 식별하기가 어려워 아군 복장인지의 여부를 가리기 위해 군복 메이커에 검사를 의뢰했는데 북괴가 제 3국을 통해 구입해간 국산 군복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침투 간첩들은 소음 권총과 체코제 기관 권총 등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있었고 주요 시설들이 그려진 서울과 의정부등의 서울 근교의 상세한 지도를 갖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요인 암살등의 중요한 임무를 띠고 남파 된 특수 요원들임이 확인되었다.


문산천 하구족 육지에서 바라본 임진강 - 이강을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이번에 월북 시도자가 사살된 지점이 나온다.

   

 

이 개구멍 같은 빈틈을 노리고 침투를 기획했던 북의 간부는 그저 지도에서 이 개천을 보고 침투하면 발각되지 않겠지

하는 책상 물림 같은 착안을 했을 것이다남한 침투를 여러번 해보아 국군의 경계태세를 잘아는 배테랑 북한 침투조원이라면 이런 유별난 지형을 절대 침투 코스로 잡지 않았을 것이다. 꾀도 지나치면 통하지 않는 다 읽힌 잔꾀가 된다.

 

6.25전쟁 뒤 북한이 30년 넘게 끊임없이 간첩들을 침투시켰기때문에 국군들도 경계태세에 많은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었다. 전방에서 지켜보니 육군은 비가 오는 날이나 바람이 부는 날 취약한 날에는 더욱 경계를 엄하게 했었던 것이 생각난다. 개구멍 같은 취약 지점은 북한 간첩들 뿐만 아니라 울타리를 지키는 국군들도 익히 알고 있었다그런 국군이 개구멍 같은 침투 취약지인 문산천을 그냥 두었을 리가 없다. 북한은 80년대 전후 서부전선에서 임진강과 한강 침투 목적으로 특수 수영훈련을 받은 UDT같은 부대를 운영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은 1978년 광천에 침투해 여러 겹의 경계망을 뚫고 북상한 간첩들을 김포 반도에서 영접해 북으로 복귀시키는 것을 성공하기도 했었지만 한강이나 임진강 수중 침투를 시도하다가 문산천 간첩처럼 사살당한 간첩들이 많았다.


임월교 바로 옆에 설치된 침투 방지 수중 철책. 이수중 철책에서 상황이 벌어졌다는 설도 있으나 나이든 동네 아저씨는 이 철책이 침투 사건 뒤에 설치되었다고 했다. 이 글에서는 당시 신문 보도대로 임월교에서 사건이 터졌다는것으로 했다.


그런 선례가 있었던 지라 국군은 이런 샛강에는 경계의 눈길을 더욱 강하게 주고 있었던 것이다이 문산천 침투 미수 사건으로 간첩들의 수중 침투 능력을 내다본 당국은 1988년 올림픽 때 한강다리 교각의 폭파 가능성을 우려해 강도 높은 경계를 했던 것이 생각난다간첩의 수중 침투를 탐지해낸 병사는 광주 C대학 재학중 입대 했던 사병으로서 이번 공로로 헬리콥터로 금의환향하는특전과 일년간의 휴가를 받았었다.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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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rgm-79.tistory.com RGM-79 2013.10.18 03: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년의 휴가라니.. 대단하군요.

  2. janghoseo 2013.10.19 0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간 정신없이 바빠서 한국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울프 독님 글을 보고 인터넷을 검색해봤네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3. latortuga 2013.10.22 0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울프 독님의 애독자입니다.
    저는 전에 바닷 물고기 메로에 대해서 댓글을 올린 사람이기도 합니다.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수 많은 간첩사건 중에 60년대에 있었던 것으로 무대는 위도 근해에서 였는데, 군산항 선적 소속 동광 00호 (75호인지 55호인지, 두척인데 번호가 기억이 안 남)라고 하는 유자망 두척이 조업 중에 어선을 납치 대동 월북하는 임무를 받은 간첩들이 그 유자망 어선에 승선 납북을 시도하다 전마선으로 어선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던 사람에 의해 신고되어 당시 위도 파장금항에 정박 중이던 수산청?소속 -선명미상- 어업지도선을 동원 현지 예비군과 경찰이 동승하여
    위도 파장금 항까지 전술한 유자망 어선 동광호를 예인하여 결국 선내에서 반항하던 간첩을 생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혹시 흥미가 있으시면 서로 연락을 유지해서 묻혀지고 잊혀진 정보를 구체적으로 밝혀 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plusalfa44@yahoo.co.kr 이 저의 메일 주소이고 저는 71부터 현재까지 계속 스페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4. 30사단 2013.12.29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30사단 92연대 3대대(송추)에서 일병으로 근무할적 이야기 이네요...ㅎㅎ

    그때 비상걸려서 무장한채로 내무반에 전투화신고 침상에서 잤습니다.
    나중에 소대장들이 견학갔다와서 간첩을 줏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5. 9사단 2014.03.03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1년도5월14일에전역하였는데요.훗날방문해보니제가근무도했던임월교가.(무장공비애들땜시)유명해졌더라고요.추억이많은곳입니다.임월교.바지소대.바위고지.낙하리.30년도더시간이흘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