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편집자가 몇 달 전에 제안을 했다. "울 선생님 옛날 군대생활 이야기를 에세이 식으로 써보면 괜찮은 반응이 나올듯합니다" 울 선생은 국방부 편집진에서 울프 독에게 붙여준 애칭이다. 그 간 회식 자리에서 들려주었던 나의 옛 군대 생활 이야기가 요즈음의 젊은이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던 듯하다.

   

나의 군대 생활은 이력을 간단히 소개한다나는 ROTC로 임관하여 기갑병과에서 전차 소대장 생활을 2년간 했었다국가나 개인이나 가난했던 시절이라서 그 무렵의 한국 젊은이들처럼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 군생활을 했었다게다가 나라는 인간이 원래 좀 괴상한 놈이라는 주위의 수근거림도 받았었고 성격도 조직 생활에 어울리지 않던 자유분방한 면이 강한 탓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나름대로 여러 경험들을 했었음을 알려 드리며 글을 시작하겠다

 

첫 글 테마를 잡기 전에 기억의 폐기물 창고 저 밑바닥에서 한 기이한 문구을 꺼내 되살려 보았다신기하게 그것이 그대로 복원이 된다! 지금은 구경하는 엽기적인 송장이 된 북쪽의 혹부리 영감에 대한 황당한 찬사였다.

   

"사천만 조선인민의 경애하는 수령이시며 백전백승의 영장이시고 항일투쟁의 애국자이시며 국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선구자이신 김일성 원수께서는 아래와 같이 교시하셨습니다!" 자신컨대 위의 김일성 찬가는 정확한 복원이다. 내가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지긋지긋하게 시달린 북한 대남 스피커 방송의 집요함이 윗 문구를 나의 머릿속에 깊숙이 각인 시킨 탓이다

 

지금 남한 인구만 5,000만이 넘었으니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 지금도 혹부리 손자 놈에게 저 미친 칭호를 쓰고 있나나는 임진강 건너 보병 연대에서 1개 소대 배속 파견을 명받고 당시 리비 교[]라고 부르던 다리를 넘어 들어가 비무장 지대 남쪽에서 생활을 했었다.

 

 

나의 군 생활이 담긴 유일한 사진-뒷짐을 지고 있는게 바로 본인이고, 기타를 들고 서 있는 인물은 김일성이라는 인물이다. 참 보고싶은 군대 인연이다.

 

 

그 곳 임진강 일대는 민간인 통제 구역으로서 휴전선이 서북쪽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어 북의 스피커 소리가 대개 서쪽에서 들려왔다평소에는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리는데 요상하게도 심야가 되면 바람 방향이 바뀌어 서풍[西風]이 불면 북한 선전 방송은 스테레오 오디오처럼 뚜렷하고 크게 들릴 때가 많았다.

 

(서풍이라고 하니 요즘 반북 단체들이 임진강 다리 앞 광장에서 날린 풍선들이 서풍에 밀려서 북으로 가지 않고 동쪽으로 날아가서 연천 등지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기사를 보고 공감이 갔다.)

 

우리 소대 막사는 보병 연대 가장 변두리에 있었다. 철조망 바로 너머 휴전선을 건너 북한까지 뻗은 넓은 숲이있었다추운 겨울 밤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으스스하게 들리는 깊은 숲이었다그 소리가 나는 컴컴한 숲을 들여다보면 마치 기관단총을 든 간첩들이 잠복하고 있을 것 같은 두려움이 들곤 했었다.

 

교교한 달빛을 타고 온 찬 기운이 목덜미를 파고드는 심야에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은 더욱 날카롭게 신경을 긁었다그 방송들은 지독한 욕설과 과대망상증이 넘치는 우상숭배로 가득 찬 것이었다.

  

북한군 선전 방송 음악의 제목중에 미제(미제국주의자) 놈들의 각[]을 뜨자는 잔인한 노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각을 뜨자는 것은 과거 백정(白丁)용어로서 짐승의 사지를 다 잘라낸다는 것인데 남한 사회에서 상상도 못할 막말이지만 북한은 유치원 아이들 교육에서도 이런 말을 쓴다는 것을 알았다.

 

김일성의 우상화는 더욱 기가 막혔다개 짖듯 매일 쏟아지는 김일성 찬양 방송중에 김일성의 호칭은 기가 막힌 것이었다중고생 학생시절 호기심으로 몰래 듣던 북한 방송에서 김일성을 "사천만 경애하는 수령" 이라고만 호칭하던 것이 서부전선에서 들은 호칭은 이보다 훨씬 더 길어진 것이었다.

 

북한노동당에서 휴전선 방송 지침을 내려 보내면서 단계마다 존재하는 아첨 분자들이 하나씩 붙였던 것이 이렇게 긴 명칭이 되었던듯하다. 신의 찬양을 방불케하는 이 미친 명칭은 북한 선전 방송이 김일성을 말할 때마다 일일이 되풀이 되었다한 시간 방송에도 두서번은 꼭 나왔었다그 거추장스러움의 정도가 무척 컸겠지만 북한 어나운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 자세히 이야기 한다면 마치 변비환자 응아하듯 말의 마디마디마다 힘을 주어서 발음을 해대니 듣는 사람들이 침튀길까봐 본능적으로 몸을 사리게 하는 일종의 시비조 말투였다지금 생각해 보면 요즈음 어느 여자 개그맨이 패러디를 하던 북한 방송의 중진 여자 아나운서 이춘희의 젊은 시절 말투와 비슷했던 것으로 생각 된다.

 

이 춘희는 작년 김정일이 죽었을 때 분바가지를 뒤집어쓴 늙은 얼굴에 검은 한복의 마녀 패션으로 나오지 않는 눈물을 찔끔찔끔 짜대며 그의 죽음을 발표하던 여자였다어느 날 밤에 그 지긋지긋한 김일성 호칭 타령에 질린 나는 문득 그 명칭들이 소대원들에게 그 웃기는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황당한 거짓인지를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틀간 북 방송들을 잘 메모했다가 며칠 뒤에 역사적인 사실들을 들어 그가 정신 병자수준의 과대 망상주의자임을 정훈 교육을 했다. 사실 북에서 짖다시피 해대는 욕설 투성이와 자화자찬의 방송에 우리 소대원들이 흔들린다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교육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머릿속에 입력된 김일성의 광대스런 호칭은 심야의 서풍에 실려오는 뚜렷한 방송들 덕분에 점점 굳어져 갔던 모양이다외출을 나와서 후방의 타 병과의 동기들을 만나면 만담하듯 그 북한 여자 어나운서의 흉내 내어 김일성 찬가를 읆었더니 다들 낄낄대고 웃으며 재미있어 하였다.

 

나도 재미가 있어서 자주 술자리에서 당시 장소팔 선생 만담하듯이 이 짓을 했었다. 나는 군복무가 끝날 무렵 휴전선을 떠나서 본부로 들어왔고 몇 달 뒤에 전역하게 되었다사회에 나와서는 말조심하느라 김일성 찬가는 입에 담지 않았지만 머릿속에는 그 미친 타령이 그냥 남아 있었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뒤 머릿속에 박힌 이 말이 나에게 자칫 큰 사고를 불러올 뻔했다세월이 유수와 같이 전역하고 10년간 흘렀다. 그때 나는 여의도에 살았었다. 어느 겨울 추운 주말,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오는데 아파트 입구에 새로 차린 포장마차가 외롭게 서있었다.

 

그 곳은 아파트 주민을 제외하고는 통행인구가 없는 곳이었다.

 

"저기가 장사가 안 되는 곳인데?"

 

호기심에 들여다보니 한 여자가 아기를 업고 하나도 팔리지 않는 안주상 뒤에 서있었다.

 

"이렇게 추운 날 아기를 업고 장사를 하다니"

 

아기를 업은 포대기안을 들여다보니 돌 전후의 아기가 새끼 자라처럼 머리를 쏙 집어넣고 나를 불안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안 된 생각에 여자에게 물어보니 집안 살림만 하다가 장사 나온 지가 며칠 밖에 안 된다고 했다이럴 때면 꼭 튀어 나오는 나의 인심 쓰기 객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매출을 올려주겠다고 안주 두 어 가지를 시키고 독작(獨酌)하기 시작했다이래저래 너스레를 떨며 열심히 살라고 아주머니를 격려해주고 앉아서 마시다보니 취기가 무척 올랐다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한 병을 더 시키고 횡설수설을 하다가 문득 옆을 보니 당시 고구마 장수들이 입던 후드달린 군용 파카를 입은 어떤 덩치 큰 녀석이 포장마차 주위를 왔다갔다하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술김에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

 

"넌 뭐야 ?!"

 

그러나 포장마차 여주인이 다급히 말린다.

 

"제 주인 아저씨여유"

 

들어보니 남편은 그 지역 방범대원이었다방범대원이 되고서 시골에서 가족들이 올라왔는데,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마누라가 포장마차를 차렸다는 것이다내 주특기인 의리의 동정심은 더욱 커졌다.

 

나는 "그래? 밖에서 그러지 말고 들어와서 한잔 마셔!"

 

그는 내말대로 포장 안으로 들어와서 술자리를 같이했다나중에 보니 나이가 나보다 더 많아 보였는데, 이미 취해서 맛이 간 상태인 나는 마구 말을 놓았다분명 방범 근무중이었을 그가 나와 술을 들기 시작하고부터 소위 말하는 나의 필름이 끊기기 시작한다하여튼 뭐라고 무척 횡설수설하며 그와 함께 소주를 세 병쯤 마시고 일어섰다여기서부터 끊어졌던 필름은 다시 이어진다방범대원이 나를 부축하며 따라왔다.

 

"아자씨가 취했응께, 지가 댁까지 모셔다 드려야지유."

 

그는 나를 따라서 단지 입구 바로 옆 10층의 나의 아파트까지 들어왔다집에 들어가니 뜻밖에도 시골에서 아버지가 올라와 계셨다. 지방의 유지격인 아버지는 속말로 말하면 가방 끈도 길었고 기막힌 달변가였으며 처세 단수도 성층권을 비행하는 수준이어서 땅강아지격인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성깔도 대단하셨고 권위의식도 강했다.

 

유전의 법칙에 따라서 부자가 비슷한 생김새였지만 내면의 능력과 성격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나의 인상이 사립문 곁에 누워서 밤도둑이 들어와도 짖기는 커녕 꼬리나 흔드는 시골 잡견 이미지라면 아버지는 광야를 휩쓰는 굶주린 승냥이 떼의 두목을 연상케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였다.

 

나와 아버지는 만화 영화 톰과 제리와 같이 고양이와 쥐같은 관계였는데 뭐 쉽게 말하자면 아버지는 나를 경멸했었고 나는 아버지는 경원했었다단지 내가 술이 취한 상태에서만 그 카리스마 있는 아버지에게 도전을 하는 비겁한 상황이 자주 있었으니 아버지는 나의 술버릇을 아주 싫어했었다 

 

그런 내가 평소 아무나 어울려서 술을 마시는 것을 천골[賤骨]스럽게 생각하시는 분이었는데 야심한 밤에 시정잡배(市井雜輩) 분위기가 물씬한 남루한 차림의 거한을 집에까지 데리고 들어왔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어? 오셨어요."

 

술이 취해서 게슴츠레한 눈초리로 인사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대답도 안하고 표범 같은 눈매로 쏘아 보았다그 눈매는 경멸과 혐오와 분노로 험악해져 있었다아버지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가운 형 잠옷을 입고 있었다그것은 십 여 년 전에 어머니가 우연히 손에 넣은 중국 비단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색깔이 은색과 회색을 섞은 것으로 좀 이상하고 실을 다르게 썼는지 잘 보면 희미하게 넒은 얼룩 같은 것이 있었다. 불량품 비단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다른 옷을 만들 엄두를 못 내다가 아버지의 잠옷을 만들어 드렸었다아버지는 독특하게도 그런 괴상한 패션의 잠옷을 좋아해서 여행을 갈 때도 꼭 가지고 다니며 입었다. 아버지가 그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미국 갱영화의 두목이 연상되었다 

 

왜 난데없는 잠옷 타령이냐고글쎄 조금 기다려 보시기를 부탁드린다이상한 잠옷을 입은 아버지의 또 다른 특징을 소개하자면 머리가 굉장히 빨리 하얗게 변색되었다는 사실이다그 때 아버지의 머리는 거의 백발의 상태였다. 이 사실을 밝히는 이유도 조금 기다려 보시기 부탁드린다 

 

그런 아버지가 노려보는 중에 소파에 앉은 나는 아버지에게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방범대원을 데려온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버지는 불쾌한 표정을 풀지 않고 외면한채 TV만 시청하고 있었다. 그래도 손님이 오셨다고 마누라가 접대 차를 가져왔다아버지는 당시 드물게 중국차를 즐겨 마셨다.

 

당시는 일반인들이 중국차는커녕 녹차도 잘 모르는 시대였다. 그것을 염두에 두었던지 마누라는 아버지와 나에게 중국 우롱차를 내오고 방범대원에게는 오렌지 쥬스를 내왔다. 차가 나오고 얼마 후 방범대원이 슬그머니 일어나서 집 밖으로  나갔다.

 

나는 "얀마! 어디가?" 하고 그를 불렀다.

 

"소변 좀 볼라고요."

 

"뭐? 화장실이 여기 있잖아!"

 

"아녀유. 한공터 가서 쌀라고 그려유."

 

그는 기어가는 소리를 내면서 추운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 아버지는 안 좋은 소리를 하고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술 좀 작작 마시고 체통 좀 지키라는 상투적인 말씀이었다. 그 녀석은 들어오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던 나도 덮치는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침실로 들어와 잠이 들었다. 아침에야 눈을 떠 보니 10시가 넘었다.

 

아버지는 일찍 나가 버리시고 마누라도 점심 모임에 간다고 외출 채비를 부산하게 하고 있었다. 부스스하게 일어난 나를 보더니 마누라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 어제 안 돌아왔어요, 신발도 파카도 두고 갔어요."

 

더구나 공들여서 대접한 오렌지 쥬스는 입도 대지 않아 버리기 아까워 자기가 마셔 버렸다는 것이었다. 보니 현관에 장화형의 방한화와 긴 파카가 벗어 놓은대로 그대로 있었다.

 

"참 별 놈이 다 있네"

 

마누라는 나갔고 나는 그냥 리빙 룸 소파에 누어서 아픈 속을 달래고 있었다점심이 훨씬 지나서야 인터폰이 울렸다. 받았더니 어제 우리 집에서 말없이 나간 그 방범대원이었다. 대뜸 그는 말했다.

 

"아자씨! 나쁜 사람 아니쥬?"

 

"왜 그래요! 어제 왜 그냥 갔어요?"

 

"정말 수상한 분 아니쥬?"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올라와서 옷하고 신발 가져가쇼."

 

"네 그러면 올라가 볼께유"

 

조금 후 그가 올라왔다문을 열어주는 나에게 주는 그의 눈길에 의혹과 불안함이 보였다. 그는 들어와서 한참을 쭈빗하더니 왜 어제 밤 방범 근무중에 나를 따라왔고 왜 도망쳤는지에 대해서 말해주었다이야기는 어제 1차로 필름이 끊긴 포장마차에서 시작되었다.

 

아기를 업은 와이프에게 맡긴 포장마차가 잘 되지도 않고 마누라 고생하는 것도 안스러워 방범 순찰을 돌다가 자주 들렸는데 어제 가보니 어느 술 취한 산적같은 놈이 앉아서 주절거리고 있더라는 것이었다돌배기 아들에게 건배를 해대는등 보통 취한 것이 아니게 보여서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지켜보며 주변을 배회했다는 것이었다.

 

행패를 부릴까봐 걱정스러워서 그랬을 것이다그런데 그런 주정뱅이가 자기에게 합석을 권하길래 매상도 올릴겸 근무 중임에도 앉아 주었는데 그 주저뱅이인 내가 물어보더라는 것이었다.

 

"너, 그 파카, 군에서 뚱쳤냐?(훔쳤냐?)"

"아뉴. 방범하면서 샀시유."  

"그런데 너 군대나 갔다 왔어?"

 

"그럼유"  

"어디서 근무했어?"

"철원유."

 

"그럼 전방아니야?"

"그럼유"

"너 북괴 선전방송 들어봤어?"

 

"많이 들었지유"

"갸들이 뭐라고 짖어댔는지 한 번 읊어 봐"

"다 잊어뻔졌시유."

"이런 돌대가리! 난 지금도 외고 있는데."

  

하면서 글머리에 소개한 김일성의 황당한 호칭을 읊어대더라는 것이었다. 목에 힘을 주며(이춘희 닮은 목소리의 여자 아나운서처럼)

 

"사천만 조선인민의 경애하는 수령이시며 백전백승의 영장이시고, 항일 투쟁의 애국자이시며 국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선구자이신 김일성 원수께서는 아래와 같이 교시하셨습니다!"

 

방범대원은 내가 엄숙한 목소리로 청산유수와 같이 김일성 찬가를 뇌까리는 것을 보고 온 몸의 솜털이 거꾸로 서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어?! 이놈 간첩이네!'

 

그는 공포를 극복하며 계산을 했다그때 간첩을 신고해서 체포하게 되면 무려 1억이나 되는 포상금이 지급되었다. 방범대원으로서 꿈도 못 꿀 엄청난 수익이었다그는 욕심이 생겼다나의 정체를 더 확인 해볼 작정도 했다그는 나에게 계속 술을 권하고 내가 답주로 주는 술을 마셨다.

 

나를 취하게 해서 정체를 실토하게 만들고 그리고 포장마차 매상도 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많이 취했다는 것이다술자리가 파장할 무렵 나는 그에게 귓속말로 은근히 속삭이더라는 것이었다.

 

"야! 너 내 말만 잘 들어. 팔자를 고쳐 줄테니까" (왜 내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나는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다.)

 

방범대원은 오싹하면서도 확신이 섰다군 생활시 들었던 간첩 식별요령이 기막히게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다그는 생각했다.

 

'이 놈은 동조자 포섭 목적으로 남파된 진짜 간첩이여!'

 

그리고 일억원의 돈뭉치가 눈앞에서 좀 더 선명하게 어른거리기 시작했다나는 더 이상 마시기 힘들자 술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갔다방범대원은 떨리는 가슴을 안고 (저도 취한 놈이) 나를 부축하고 집까지 왔다. 내가 사는 집을 파악해 두었다가 신고하기 위해서였다아파트를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의 아버지가 와 있있고 나의 필름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은 앞에서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그가 말하는 장면이다아파트 앞에서 주소를 확인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내가 방범대원의 파카 목덜미를 잡아채더니 아파트 안으로 강제로 끌어 당겼단다그는 나에게 단단히 잡힌 파카를 벗고 안으로 들어오면서 방한화도 벗었다

 

그런데 그를 단숨에 제압한 것은 우리 아버지의 표범같은 눈매였다그가 인사를 정중히 했는데도 아무 말도 안하고 노려만 보더라는 것이었다머리가 허연 무섭게 생긴 양반이 노려보는데 이 방법대원은 표범 우리 안에 던져진 한 마리의 토끼처럼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질려버렸다더구나 내가 한 마디를 더했다.

 

"아부지! 이 놈 괜찮은 녀석이요."

 

이 말은 나도 기억이 난다취객을 행여 다칠까봐 집까지 모셔다 주는 착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했던 것 같다그러나 방범대원은 더 공포에 질렸다. 그는 내가 두목에게 자기를 포섭대상으로 괜찮은 놈이라는 보고하는 것으로 착각하였다백발의 두목은 아무 말도 안하고 TV를 보다가 힐끔힐끔 자기를 노려보다가 하였다. (빨리 가주었으면 해서 였으리라) 

 

나는 그가 왜 그렇게 아버지에게 공포심을 가졌는지 한참 후에야 짐작 할 수가 있었다당시에 성룡의 취권이 흥행에 성공한 뒤에 국내 극장가에는 홍콩, 대만 무협 영화가 대성황이었다이런 영화를 보면 대개 정의의 사나이 역에 맞서는 악당의 최고 두목이 느지막하게 나타나서 주인공과 최후의 맞장을 뜬다.

 

이런 악당은 불가사의한 고수의 실력을 구사하며 주인공을 죽을 지경으로 몰아넣으면 주인공은 사력을 다해 기발한 창의력으로 이를 처치하고 최후의 승리를 차지한다대개 도사니 진인(眞人)이니 호칭을 쓰는데 머리가 아주 하얗고 눈썹도 하얗고 수염마저도 하얗다이 늙은 악당들은 눈매가 아주 고약하다그리고 또 있다.

 

백발 악당들을 더욱 악당스럽게 보이기 위해서 하얀 도포들을 입었다. 즉 그날 밤 나에게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아버지 머리를 중국식 상투를 틀어놓으면 비슷한 인물 설정이 된다. 그는 시골 변두리 극장에서 이런 홍콩, 대만 영화를 많이 보았던 모양이다그날 밤은 촌뜨기가 무한한 공포에 사로잡힐만한 무대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겁을 먹고 속으로 덜덜 떨고있는 그에게 마누라가 차를 내왔다.

 

앞서 말한대로 우리 부자에게는 중국차를, 그에게는 오렌지 쥬스를 내온 것이다. 이 오렌지 쥬스에 그의 공포심은 최악으로 폭발해버렸다.

 

'왜, 나하고 간첩단하고 주는 차가 다른 거야?'

 

그의 공포심은 우리 부자가 수면제를 먹여서 북으로 납치해가려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중에 있다고 지레 판단해 버리게 하였다시절은 북한의 여러 납치 사건으로 시끄러울 때였다. 그래서 파카와 방한화를 벗어둔채 우리 집을 탈출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집을 탈출하자마자 자기 포장마차 반대쪽인 공중전화로 달려가 간첩 출현 신고를 하였다. 그 전화 번호가 113이었던가? 그는 자기가 나에게 술을 먹이면서 자신도 많이 마셔 혀가 잘 안돌아간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113에 취객들의 장난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고 했다신고를 했는데도 수화기 넘어 들리는 소리는 퉁명한 것이었다.

 

"먼저 파출소로 가서 신고하시오."

 

할 수없이 그는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파출소까지 거의 500여 미터를 양말 차림으로 달려갔다그가 파출소에 숨 가쁘게 도착해보니 파출소장과 방범대장이 앉아 있다가 험한 얼굴로 그를 대했다. 근무 시간에 행방불명되었다가 술 취한 얼굴로 나타났으니 골이 나있는 것도 당연했다.

   

방범대원은 숨너머 가는 목소리로 간첩단이 출현했다는 사실과 자신이 그들의 납치 음모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다는 사실은 보고했다. 인상을 쓰는 파출소장은 그 중요한 보고를 건성으로 들었다. 그는 긴박한 간첩단 출현의 보고가 약 탄 오렌지 쥬스 대목에서 그런 중요한 보고를 끊어 버리고 불호령을 쳤다.

 

"새꺄 ! 근무 시간에 어디서 술 처마시고 이제 나타나 헛소리하고 있는거야! 왜 맨발 차림야?!신발은 어디서 잃어버렸어?"

 

소장의 큰 소리에 이어서 방범대장의 노성이 이어서 터졌다.

 

"니 정신 차리거래이! 닌마가 돌았는데 머리 허연 간첩단들이 어데 있겠노? 술 얼마나 마셨노?"

 

이어서 성질 급한 파출소장의 욕설이 다시 터져 나왔다.

 

"새꺄! 그 복장으로 어떻게 근무 하겠어! 술까지 처먹고! 빨리 내 눈 앞에서 꺼져!"

 

그리고 담당 순경에게 지시했다

 

"이 놈 결근 처리해! 그리고 집으로 돌려보내!"

  

말을 들어보니 그가 평소 어리숙하고 띨띨해서 간부들의 미움을 받아왔었던 것 같다. 그가 간첩 출현 신고같이 중요한 신고를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더구나 술까지 마시고 주정뱅이같은 차림으로 나타나서 현실감 없는 소리를 주절대니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백발 간첩단 출현 신고를 기본부터 묵살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소장에게 쫓겨난 그는 할 수없이 파출소 슬리퍼를 얻어 신고 집까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헐 수없이 택시를 탔시유. 버스가 끊어져서유."

 

가난한 그에게 택시비는 큰 부담이었던 듯, 택시 탔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되풀이 했다. 결론은 자기가 되돌아온 것은 파카와 방한화를 찾으러 온 것이지만 자기가 포악한 소장에게 미친놈으로 완전히 찍혔으니 내가 한 사실에 대해서 전화 한마디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내가 아슬아슬한 실수를 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말은 내가 김일성 찬가의 용공행위를 경찰에 스스로 시인해달라는 말이기도 하였다. 내가 북한의 골수 노동당원이나 할만한 김일성 찬가 완창을 막힘없이 했다는 것은 나의 사상성을 의심받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고 나가서 경찰에 의한 가택 수색의 가능성케 하는 것이었다..

 

나의 집에는 내가 중학생 시절부터 미군 부대 주변 헌 책방에서 사 모은 각종 군사 잡지와 책자가 책장 가득히 있었다. 지금이야 그런 책자가 이상할 것도 없었지만 반공과 방첩의 분위기가 강한 그 시절에 민간인으로서 있기가 힘든 없는 일이었다나의 김일성 찬양과 군사 서적의 발견은 사상성을 충분히 의심받고 집중수사을 받았을 가능성은 물론이고 적 찬양 고무 행위로 처벌받을 염려도 컸다.

 

다행히 조금 띨띨한 그가 술을 마시고 횡설수설했기에 칼날을 비끼어 갔을 뿐인데 만약 그 포장마차에서 고약한 심보의 형사나 보안 대원같은 사람이 있었더라면 나는 큰 봉변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냉정하게 그 순진한 촌놈 방범대원에게 오리발을 내밀었다.

 

"난 휴전선 근처에 가본일도 없어요. 형씨가 들었다는 김일성 찬양은 아마 내가 취해서 TV 반공 드라마 본 것을 흉내 내 본 것일게요."

 

실망하는 그에게 짜장면을 시켜 주고 달래서 보냈다그는 영업도구인 파카와 방한화를 챙긴 것으로 만족하고,

 

"우리 가게 자주 오셔유. 그런디 술을 많이 드시면 안돼유." 했다.

 

나는 그 아슬아슬한 실수 후에 조심했을 뿐더러 나는 머리에 입력된 김일성 찬가를 의도적으로 지우려고 노력했었지만 보시다 시피 긴 세월이 지나고 나서도 각인된채 남아 있다. 러시아 과학자 파브로프는 개에게 밥을 줄때마다 종을 울렸는데 훈련이 된 후 밥을 주지 않고 벨만 울렸는데도 침을 흘리더라는 것이다.

  

즉 조건 반사의 원칙이라는 것인데 나의 웃기는 김일성 찬가가 머릿 속에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은 심리전을 연구하는 전문가에게 한 참조 사례가 될 수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도 되풀이해서 들려주면 잠재의식에 각인 될 수 있다는 법칙을 알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한 사실, 김정일은 늙은 어나운서 이춘희가 똥 눌 때 힘주는 것 같이 악쓰는 목소리가 적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고 했는데 아시다시피 이춘희는 남한에서 개그의 패러디 대상이 되고 있다. 휴전선에서 비슷한 소리를 밤마다 시달렸던 나보고 평가하라고 한다면 그녀의 말투는 동네 개가 다 웃어댈 민족적 웃음거리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20여년 전 남한의 한 어벙한 방범대원이 이춘희 비슷하게 흉내를 낸 말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정도를 넘어 멘붕상태로 대소동을 벌였다는 사실이 있었다는 우스개 일화가 있었다는 것을 첫 스토리로서 소개한다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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