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일을 기점으로 아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하여 전면이 텅비어버리자 북한군은 신속히 국군과 유엔군을 추격하여 낙동강을 돌파한다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계획을 수립했다. 아군에게 낙동강 방어선은 대한민국의 유일 생명선인 부산을 안전하게 확보하기위한 마지막 보루였지만, 반면 이곳을 돌파 당하면 북한의 승리로 전쟁이 끝남을 의미하였다. 필연적으로 낙동강 방어선에서 물러설 수 없는 혈전이 예고되었다.

 

아군이 후퇴하자 북한군은 새로운 공세를 준비하였다.

 

최초 낙동강 방어선은 동에서 서로 영덕-청송-의성-낙동리를 거쳐 여기서 남으로 낙동리-왜관-남지-마산에 이르는 총 240킬로미터의 교두보였다. 방어선의 상당 부분이 낙동강에 연하여있어 방어가 용이했지만 모든 구간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북부의 낙동리-영덕간의 80킬로미터와 서남부의 남지-마산 간의 80킬로미터 구간은 북한군의 침투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편이어서 이후 대부분의 혈전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드시 북한군의 진격을 막아내야 했다.

 

폭염의 8월과 더불어 낙동강을 중심으로 전선이 형성되어가기 시작하였을 때 양측의 전력은 서서히 균형을 맞추어 가고 있었다. 아군은 계속적인 증원으로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힘을 키워가고 있었는데, 반하여 북한군은 낙동강까지 진출하면서 56천여 명의 병력 손실과 함께 초전승리의 원동력이었던 전차의 80퍼센트 이상이 파괴된 상태였다. 따라서 일선 부대의 전투력은 이미 최초 편제의 50~60퍼센트 수준으로 격감했다.

 

북한군도 많은 전력의 손실을 보았다.

 

전후 파악된 여러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전쟁을 개시하였지만 막상 구체적인 후속계획이 미흡하여 전선이 남으로 내려갈수록 전력보충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실 북한군의 전력이 이처럼 급속도로 고갈된 데는 아군의 격렬한 저항 때문이었는데 바로 워커가 의도한 바였다. 개전 후 7월말까지 아군은 전사에 일방적으로 패배와 후퇴의 기록만 남긴 것 같지만 그러한 반대급부로 북한군에게 급격한 소모를 강요하였다.

 

제공권을 장악한 아군의 공습으로 북한군은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다.

 

북한군은 겉으로 7월말까지 한반도의 90퍼센트를 점령하는 엄청난 전과를 보였지만 당장 낙동강을 넘어 철수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추격하여 격파할 여력이 없을 만큼 약화된 상태였다. 만약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에도 초전 3일간처럼 공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능히 한반도 전역을 조기에 휩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였고 다만 그동안의 공세를 발판삼아 전쟁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공세 당시 사격을 가하는 북한군 기관총 사수

개전 초에 북한은 조공으로 정면을 견제하면서 주공을 아군의 간격사이로 진출시켜 후방을 차단하는 전술을 사용했지만, 낙동강에 촘촘히 방어선이 구축되자 더 이상 이런 전술을 사용할 수 없었고 이제는 피해를 무릅쓰고 정면으로 공격을 강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초조해진 북한군은 영천 및 포항 방향 그리고 창녕 및 마산 등 다양한 여러 곳을 선정하여 전선의 일각을 돌파하면 그곳으로 예비대를 투입하여 부산을 점령하려 하였다.

 

북한군은 방어선 일각이 돌파되면 부산까지 급속 남진할 계획이었다.

 

반면 워커는 전선을 최대한 좁혀 얻게 된 일부 예비 병력을 후방으로 빼내 기동력을 보강시킨 후 모든 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낙동강 교두보 내 가장 중앙에 주둔시켜 전 전선을 넘나드는 소방수 임무를 수행하도록 조치하였다. 최초 북한의 공세는 거셌고 아군은 고전하였다. 비록 전력균형에서 아군이 열세를 회복하고 있던 상태였지만 아직까지 전쟁의 주도권은 북한군이 가지고 있었다.

 

워커는 전선을 반드시 사수하라고 명령하였다.

 

이 순간을 버티면 위기를 극복하고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워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예하 장병들에게 낙동강 교두보가 반드시 사수하여야 할 최후의 거점임을 알리고 더 이상의 후퇴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의미를 담은 유명한 연설을 한다. “우리에게 됭케르크나 바탄은 없다. 그러한 탈출구가 있다고 기대하지도 말라! 오로지 사수하느냐 죽느냐(Stand dr Die)의 선택밖에 없다” (계속)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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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rgm-79.tistory.com RGM-79 2013.07.15 1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워커장군은 정말 지금보다는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할 장군이죠..

  2. 닥터K 2013.07.15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에게 기회가 최소 3번은 있었죠.

    영천지역을 점령했을때 북한군에게 적화통일 달성의 기회가 되었고 북한군 4사단이 서쪽으로 몰래 진격해들어왔을때 만약 좀더 진격속도가 빨랐다면 낙동강 전선이 붕괴되었을 수도 있겠죠.

    마지막으로 7번 국도 쪽에 국군 2개 연대만 지키고 있었을때 그쪽으로 주공을 집중했더라면 낙동강 전선이 붕괴되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