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항 자유의 여신상 상공을 나르는 융커 390 (상상도)

 

지난 해 6월 이 블로그에 '환상의 일본 6발 중폭격기'라는 제목으로 일본이 1942년부터 일본 사할린에서 출발하여 미국을 폭격하고 대서양을 건너 계속 비행, 프랑스로 가 재무장 재급유하고 다시 미국을 폭격하고 일본으로 귀환하는 후가쿠라는 비행기를 개발하다가 설계 단계에서 전세 변화와 막대한 개발비 등의 이유로 포기했다는 글을 포스팅했었다.

 

여기서 이야기를 더 이어가자면 이미 이 때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특명으로 미국 폭격이 가능한 6발 대형 폭격기들의 초기 디자인들이 여러 항공사에서 제시되었고 그 중 몇가지의 시제기들은 이미 생산되었었다. (소위 말하는 Amerika bomber project-미국 폭격기 프로젝트다) 그 중 하나인 융커 390의 첫 비행은 194310월에 있었다.

 

융커 390

 

위의 사진 속 비행체가 바로 6발 중폭격기 겸 장거리 정찰기, 그리고 수송기로도 사용할 다목적 개념으로 제작된 독일 융커 390 기다.

 

융커 390

 

참고로 일본이 꿈꾸다가 포기한 6발 중폭격기 후가쿠와 독일 융커 390기의 제원을 비교 소개한다.

 

제원 

후가쿠

융커 390(v1형)

길이

39.98m

34.20m

날개

62.97m

50.30m 

무게 

33,800kg

39,500kg 

항속거리 

19,400km 

9,700km 

최대 속도

779km 

505km 

 

후가쿠가 2,500마력의 대형 엔진을 예정한 반면 융커 3901,250마력을 갖춰 둘의 마력과 항속거리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독일 융커 390 6발기는 두어가지의 비화를 가지고 있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융커 390

 

하나는 일본이 이 독일 6발기의 면허 생산을 추진했다는 비화와 6발기가 32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 비행으로 뉴욕 상공까지 비밀리에 다녀 갔다는 사실이다. 한 때 일본에서 융커 390 폭격 정찰형 디자인을 도입하려는 프로젝트가 추진되었었다. 일본 육군 항공대는 이 초장거리 군용기에 큰 관심을 가지고 관심을 표했다.

 

1944년 가을 일본 정부와 독일 정부는 융커 390 면허생산에 관한 협정을 맺었고, 그 세부 설계 도면은 일본 정부 대표 오타니 소장에게 1945218일까지 넘겨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계약이 성사되었는지는 그 뒤에 추가 정보가 없다. 1944년이면 후가쿠의 설계도가 거의 완성되었지만 그 활용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이 강하게 제기 될 정도로 전황이 악화되었다. 그런 상황에 막대한 생산 경비가 드는 또 다른 중폭격기의 라이센스 생산을 추진했는지는 의문이다.

 

 융커 390의 폭격 상상도

 

융커 390이 미국까지 비행했다는 사실이 최초로 보도된 것은 195511월호 영국 항공 잡지 RAF 플라잉 리뷰였다이 잡지의 편집장은 항공 작가 윌리엄 그린이었다. 그는 융커기의 뉴욕 왕래설에 다소 회의적이었지만 그 내막에 대해서 소개하였다. 그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뉴욕까지 왕복 비행을 한 융커기는 두 대였다. 두 기는 대서양을 건너 뉴욕시 상공에 도착하여 한 시간 동안 머물러 있었다.

 

일본 후아쿠의 완성된 상상도

 

다음 해 1956년 같은 잡지는 위의 정보가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한 영국 공군 장교의 편지를 실었다그는 그가 소장하고 있는 독일 공군의 극비 자료를 통해 1944년 하반기에 융커 390 V1기 한 대가 대서양을 건너 뉴욕 시 북쪽 19km 거리의 상공 지점까지 도달했다가 다시 기수를 돌려 당시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로 무사 귀환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융커 390

  

그린 편집장의 기사에 의하면 1944년 연합군의 정보 부대가 독일의 포로로부터 프랑스 보르도 근처 몽드 마르상에 기지를 두고 있던 독일 루프트바페 FAG 5 부대에 융커 390 V1 형이 배치되었다는 사실과 이 비행기가 32시간이나 걸리는 뉴욕-보르도간  왕복 비행 했다는 사실을 자백받았다.

 

그러나 전후 이 정보는 영국 정보 당국에게서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되었다. 후에 항공 역사가 케네스 P. 웨렐이 밝힌 바에 의하면 이 융커 390기의 뉴욕 방문설은 19448월에 작성된 두개의 영국 정보 보고 자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했다. 두 정보 보고는 독일 포로들을 심문해서 얻은 정보 자료에 의거한 것들이었다. 보고서의 제목은 독일 항공기 엔진과 장비에 대한 일반 보고서였다.

 

포로들은 뉴욕에 접근한 융커 390기가 뉴욕시 인근 롱 아일랜드 섬의 해안 사진을 촬영해왔다고  일치하는 정보를 실토했다. 그러나 실제로 사진은 발견되지 않았다. RAF 플라잉 리뷰지에 게재되었던 융커기의 뉴욕 비행 기사는 그 후 여러 출판물에서 인용되었다.

 

편집장 윌리엄 그린은  그후 자기가 쓴 ‘2차 세계 대전의 군용기들(1968)이라는 유명한 저서와 '3제국의 군용기(1970)'라는 저서에서 확실한 자료의 제시없이 위의 정보를 인용했다. 뒤에 나온 2차 대전의 항공기나 항공전에 관한 많은 출판물들은 그린의 저서를 출처로써 활용하였다. 그러나 그린은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  항공작가 케네스 P.웨렐에게 자신이 소개했지만 사실 융커기의 뉴욕 방문설을 더 이상 신빙성을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융커 390

 

웨렐 자신도 이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융커기가 프랑스에서 뉴 파운드랜드까지 비행 할 수는 있겠지만 그 곳에서 남쪽 뉴욕까지 왕복하려면 3,800km를 더 날아야 하는데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단정했다.

 

 융커 390

 

융커 390 V2기(해상 정찰형)의 시험 조종사였던 카알 코스러와 군터 오트는 융커사가 만든 여러 대형기들에 대한 공저를 남겼는데 이 뉴욕 비행설을 전면부인했다. 융커 V1은 생산되자마자 19431126일 당시 독일령이었던 체코의 프라하로 보내져 19443월까지 그 곳에서 내내 시험 비행만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거리적으로 뉴욕까지 비행이 가능했었던 프랑스에는 단 한대의 융커 390도 없었다는 말이다194411월 이 기체는 융커사 공장으로 되돌아와 머물다가 전황이 극히 악화된 19454월 미군이 공장 부근으로 진격해오자 완전 해체되어 폐기 되었다.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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