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공군이 냉전시대 핵전쟁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다발 제트 폭격기가 바로 6발 엔진의 B-47이다. 현재도 비행하고 있는 B-52가 이 폭격기의 후속기다. 얼마 사용되지 않고 일찍 퇴역했지만  제조사가 같은 보잉사라서 신구 두 기종의 유사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B-47이 훨씬 작다1951년도에 활동을 개시하여 동서 냉전이 차가웠던 50년대와 60년대 초까지 미공군의 주력 전략폭격기로서 활동하였다.

 

6발 엔진의 B-47

 

후속기인 B-52가 월남전과 중동전등 여러 전쟁에 참가하여 폭탄을 투하했던 화려한 전력이 있는 반면에 B-47은 실전에서 폭탄을 투하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전쟁 상황에서나 입을 피해를 종종당했었다. 이 육중한 6 발의 폭격기는 그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스파이 임무를 수행했었다. (1950년대 초기는 U-2기와 같은 스파이 전문기가 없던 때였다. U-2기는 1957년도에 출현하였다.)

 

B -47은 폭격기였지만 장거리, 고공 비행 능력으로 비밀 정보 수집 목적으로 사용되었었다. 그 임무는  물론 적지, 즉 소련 영공에서 이뤄졌다. B-47 비록  최고 고성능기였지만  소련  영공 침투는 아주 위험한 임무였다B- 47의 첫 번째 소련영공 침입은 19521015일 실행되었다. 알래스카에 기지를 둔 정찰형 RB-47이 동부 시베리아 소련군 비행장을 정찰 비행한 것이 최초의 소련 영공 침투였었다

  

소련 영공에 침투할 수있었던 이  최초 적지 비행 성공후 다수의 RB -47들이 소련 영공 비행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매번 소련 요격기들이 출격했었는데 B-47도 매번 쾌속의 도주 기동으로 빠져나갔었다.

 

B-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기에게 요격당한  횟수가 5회나 되었고 3회는 격추 당해버렸다. 공격을 받은 B-47들은 후미 기관포로 대응했지만 소련기들이 피해를 입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195458일 소련 북빙양쪽 코라 반도에 침투해서 극비의 정보를 수집한 RB-47E형이 소련에서 벗어나고자 서쪽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조종사 할 오스틴은 아주 높은 고도를 날았다이 고도는 당시 소련 공군의 주력기인 미그 15기가 올라올 수없는 고도였다. 그러나 미 정보당국이 미처 몰랐던 것은 이곳 소련 공군 기지에 훨씬 높은 고도를 날 수 있는 신형 미그 17기가 몰래 배치되었다는 사실이었다.

 

B-47

 

3기의 미그 17기가 요격 출동해 소련 상공을 거쳐 핀란드의 영공까지 쫓아오며 집요한 공격을 가했다 RB -47에 상당한 피해를 주었지만 조종사 할 오스틴은 스웨덴 상공으로 편법 진입 통과해서 영국 그로스터셔의 페어포드에 있는 기지로 무사 귀환 하였다. RB-47의 빠른 스피드와 장거리 비행 능력이 할 오스틴기의 생존에 큰 기여를 하였다이 사건은 미국이나 소련 양쪽 다 발표하지를 않아 비밀에 묻혀 졌다.

 

B-47

 

그러나 최초의 B-47 격추 사건이 발생하였다1955417일 알래스카에서 이륙하여 캄차카 반도로 정찰 비행을 나간 RB-47 한기가 미그 15기들에게 요격당해 공해상에서 격추당했다. RB-47 기의 승무원들은 전원 실종됐다196071일 소련의 미그 19기가 바렌츠 해 공해상 상공에서 RB-47H를 격추하여 승무원 6명중 4명이 죽고 2명이 포로가 되었다. 두 명의 포로는 다음해인 1961석방되었다. 돌아온 부조종사는 미그 19기가 하방을 내려다보는 관측구 스코프에 바짝 붙어 시계를 방해했다고 말했다.

 

B-47의 후속기 B-52

 

기체 하부에 바짝붙은 미그-19기가 B-47 조종사가 적기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가 없게 하방 시야를 가려놓고 공격했다는 진술이었다B-47기들의 위험한 정찰 비행은 적지 침투 전문의 1957U-2기가 배치되고 나서부터 그 역할이 대폭 줄어들었지만 적영공 근접 비행은 계속되었다. 

 

B -47이 마지막으로 미그기들에게 공격당한 것은 1965427일 동해 상공에서 였다. RB-47한기가 북한 공군 미그 17기들에게 공격당해 기체가 대파되고 엔진 두 기가 정지되었지만 이 정찰기는 간신히 일본 요코다 기지로 돌아왔다B-52의 대거 등장으로 B-4760년대 초부터  점차 일선 임무에서 물러났지만 여러 실험이나 기타 목적 기체로서 1977년도까지도 현역으로 뛰었다. 미 전후 등장한 중폭격기중에 가장 대량인 2,032기가 생산되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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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환욱 2013.05.28 2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울프독님, 좋은글 늘 감사합니다. 항상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2013년 여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2. 리산 2013.05.29 1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독자입니다.
    한국전쟁에 관심이 많은..

    개인적으론 6.25 전쟁 당시 한국군 연대장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데,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책에서 인터넷에서
    작은 자료들만 보게 되네요.^^

    나중에 한국전쟁에 대한 글도 자주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