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이홍희는 총구를 낚아챘고 두 사람은 서로 뒤엉켜 몸싸움을 하였다. 틈을 노리던 정순덕은 칼빈 사격으로 정정수를 쏴 죽이고 이어서 부엌에서 고함을 지르고 밖으로 뛰어 나가는 정정수 아내의 등을 겨냥해 그녀의 숨을 끊어 놓았다. (재판에서 정순덕은 정정수 부부를 죽인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자기는 이홍희와 싸우는 정정수의 다리만 쏘았다는 변명을 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정수의 배신에 분노로 눈이 먼 이들은 정정수의 이웃에 사는 형 정위주의 집을  찾아갔다. 두사람은 마침 산기가 있어  해산의 진통을 앓고 있던 정위주의 처를 무자비하게 사살했다. 아기가 막 태어나고 있던 순간이었다잔인함이 극에 달한 이들은 옆 집의 헛간에서 정위주를 찾아내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광기 서린 협박 연설을 하고 정위주를 공개 사살했다.

 

발광을 한 그들은 막 태어날 아기를 포함한 두 형제의 다섯 식구의 목숨을 앗아 버리고도 부족했는지 두 형제의 집에 불을 질러 전소시켰다.(생죽임을 당한 정위주 부인이 낳던 아기는 아들이었다. 두 부부사이에는 두 딸밖에 없어서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바로 아들이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이들의 난동은 끝이나고  두 사람은  산으로 도주했다경찰이 즉각 출동하여 뒤쫓았으나 두 사람은 이미 깊은 산골로 종적을 감췄다.

 

병마에 시달리던 말년의 정순덕

 

그날 밤의 살인 광란은 동네 사람들이 다 보았기 때문에 나중에 경찰에 체포되어 철저히 부인과 거짓말, 오리발로 일관하던 정순덕도 이 범행에서는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정순덕은 체포 된 뒤에도 13년간 산에서 버틴 여자답게 그 들짐승과 같은 사나운 야성을 내보이며 경찰들을 애먹였다.

 

그녀는 체포 때 다리 하나를 절단하는 대수술을 받게되는 중상을 입었는데도 발악을 해댔고 산청 경찰서에 구속되어서도 그 발악을 계속했다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 그녀는 두 번이나 붕대를 모아 자살을 시도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재판에서 자신에게 사형을 구형한 검사에게

 

! 이 개새끼야! 감형(減刑)만 시켜봐라. 이 개놈아!”

 

라고 욕을 해댔는가 하면 변론을 하는 국선 변호인에게는 집어 치워라! 이 개새끼들아!”라고 타고난 사나움을 마구 들어내기도 하였다. 녀의 왈가닥 같은 성격이 험한 빨치산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13년이나 계속되면서 더욱 거칠어져 살인마저도 서슴치 않게 했었던 것이다.

 

공비들이 다 소탕당했을 무렵 쌍계사 뒷산의 살해 사건이 언론에 크게 나오자 북한은 이들을 주목했다김일성은 남조선에서 유격 활동을 할 곳은 지리산 밖에 없다고 했었는데 그의 말을 3인조가 충실히 이행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특명으로 1960년대 초 북한에서 정순덕을 판타지 수준으로 극화한 지리산 여장군이라는 영화가 제작되었었다.

   

황당한 사실은 정순덕을 지리산 여장군으로 떠받는 말들이 현재도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내가 정순덕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참전경우회 사무총장 김을로 선생으로부터 그녀의 집안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다. 김 총장은 정순덕과 같은 고향이었다. 더구나 김 총장의 처가댁은 안내원 동네에 살던 정순덕 가족이 소개령에 의해서 황점으로 일시 피난 나왔을 때 바로 이웃에 살았었다.

 

출동하는 전투 경찰

 

김 총장은 정순덕의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그녀가 어렸을 때 남의 집 식모살이를 했다고 했다그녀를 우악스럽게 만든 운명이 어렸을 때부터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겠다.

 

공비들이 준동하던 시절의 지서는 요새화 되어 있었다.

 

정순덕의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아버지 정삼수씨와 부인 진도원씨 내외는 법 없이도 살 착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녀의 집이 딸만 세 명을 낳았는데 공교롭게도 정순덕이 입산하고 나서 아들이 한 명 태어났다. 정순덕은 심야에 식구가 다 잠든 집을 몰래 찾아 갔다가 아기를 보고 크게 놀라서 남동생인가하고 고추를 확인하기도 하였다.

 

아들은 풍랑 거센 집안에서 태어나서 주위의 차별을 이겨내고 잘 자라서 중고 자동차 판매상이 되었다김 총장이 산청 군민회에서 정순덕 동생을 만났더니 누나 정순덕이 자기 부모가 사람들에게 외면 받고 힘들어할 때 김 총장 처가댁 어른들이 잘 도와주어서 참 고마웠었다고 전해주더라는 것이었다.

 

김영국 박기수 두 경찰이 정순덕 이홍희를 2 주간에 걸쳐 잠복 끝에 기습하여 체포한 마을

 

정순덕은 그녀의 일대기에서 수감 후에나 출소 후 어머니만 제외하고 가족들과 담을 쌓고 살았다고 이야기 했지만 형제끼리는 다소의 내왕이 있었던 듯하다. (그녀 때문에 막심한 피해를 입은 그녀 가족들을 의식해서 표면적으로는 숨긴듯하다.)

 

정순덕은 1985년 출소 후 여러 보호 시설을 전전하거나 공장에서 일하기도 하며 고달픈 인생을 이어갔다그러다가 2004년 뇌일혈이 도져 저 세상으로 갔다. 그녀를 화장한 유체는 현재 서울시 구기동의 모 사찰에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정순덕이 체포 후 다리 절단 수술을 받고 군 보건소에 구금되어 치료를 받고 있을 때 보건소 밖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정순덕을 내놓으라며 마구 성토하는 욕설들을 했었다고 했다.

 

그들중에 공비들에게 학살당한 유가족들도 많았겠지만 정위주 형제 부부와 해산중인 아기까지 죽인 정순덕 일당의 천인공노할 범죄에 분노를 품은 시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살인외에도 정순덕 일당은 지리산 지역을 횡행하며 생존을 위해서 수많은 강도와 절도 행각을 저지르고 주민들의 생업에 막심한 피해를 준 이유만으로도 주민들의 큰미움을 받았다.

 

정순덕이 체포 된 1963년도의 신문 기사를 검색해보니 19638 남녀 공비팀들이 지리산 노고단을 찾은 40여명의 외국인들에게 나타나 금품을 요구하다가 외국인이 총을 꺼내서 대항하려하자 도피했다는 기사도 있고 지리산에 캠핑 온 전남공고 학생들의 텐트를 털어서 물품을 탈취했다는 기사도 보인다.

 

산청 경찰서 김영국 경사와 박기수 순경이 M2 카빈으로 퍼부운 실탄 세례를 받고서도 울타리를 기어 넘어가던 이홍희도 죽었다.

 

그녀의 과거 행적을 알고 다시 한 번 보자. 그녀의 행각을 알게 되면 어떤 시각에서도 정순덕을 잔다크, 유관순이나 핍박받다가 죽은 엉클 톰으로 절대 미화할 수 없다. 산골에서 태어나 잘 배우지도 못했고 그저 잘못된 인생으로 들어섰지만 자발적인 귀순의 기회가 있었고 당국과 가족의 귀순 호소가 집중적으로 있었음에도 그 잘못된 인생을 13년이나 이어 갔었다.

 

그녀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범죄까지 저지르고 주민들과 가족들에게 막심한 피해를 주었으며 대한민국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했었던 인간이다 정순덕은 한 인간으로 보면 한없이 불쌍한 사람이지만 일부 진보 세력이 잘 알아보지도 않고 그녀의 인생을 판타지화하는 것은 북한의 김일성이 했던 짓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병석의 정순덕

 

글의 맺음에 한마디 첨부한다. 그녀가 최후의 공비라는 타이틀이 공식처럼 따라다니지만 산청 경찰서의 역사인 지리산의 포성은 그녀와 이홍희가 최후의 공비가 아니라 정순덕 체포 다음 해인 19646산청군 생초면 고읍의 한 수로에서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강우형과 안원도가 최후의 공비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정충제씨가 쓴 실록 정순덕에서 그들이 정순덕이 체포 되기 몇 개월전 19635월 강우형 이모 집에서 얻어온 막걸리 한 단지를 다 마시고 강우형이 안완도를 사살하고 자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정순덕 팀은 지리산을 헤매다가 이들괴 우연히 만나서 같이 생활하기도 해서 두 공비 팀들은 서로를 잘 알았다.

 

당시 신문을 검색했지만 63년의 정순덕 이야기는 자세히 보도가 되었는데도 63년과 64년 기사를 다 정밀 검색했지만 두 공비들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순덕의 증언에 더 무게가 있어 이에 밝혀 놓는다.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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