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후퇴 후 북위 37도선 일대까지 밀려났던 아군은 전의를 가다듬고 반격을 실시하여 두 달 만에 서울을 재탈환하고 어느덧 전선을 38선 인근까지 밀어 올렸다. 이에 공산군은 전쟁의 주도권을 다시 회복하고자 대규모의 공세를 실시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1951422일 시작된 중공군의 제5차 공세였다. 공산군은 30만의 대군으로 서부전선을 돌파하여 한강이북에 배치된 유엔군을 일거에 격멸한 후 서울을 재점령하겠다는 작전을 수립하였다.

 

1951년 4월 22일 서울 재점령을 목표로 중공군의 제5차 공세가 시작되었다.

 

주공이 파주 일대를, 조공이 춘천 일대를 돌파하여 동시에 서울로 향하려고 하였는데 공교롭게도 파주에는 영국군 제29여단이, 춘천 후방에는 영국군을 중심으로 편제된 영연방 제27여단이 배치되어 있었다. 영국과 영연방국들은 6.25전쟁 당시에 우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던 고마운 우방들이다. 특히 이들은 이번 공세에서 영원히 길이 빛날 혁혁한 전공을 세우며 대한민국을 구하는데 커다란 일조를 하였다.

 

브렌 기관총을 사용하는 영연방군 소속 호주군

 

파주에서 적의 주공과 마주한 29여단은 임진강 일대에서 격전을 벌였다. 비록 1개 대대가 설마리에서 포위당해 전멸하면서 30퍼센트에 이르는 커다란 피해를 보았지만 무려 5배나 많은 적을 3일간이나 막아내어 동두천 지역으로 돌파구를 확대하려는 적의 기도를 좌절시켰다. 동시에 적의 조공이 출몰한 곳은 중부전선의 춘천북방 사창리였다. 이곳을 담당한 부대는 국군 제6사단이 초전에 붕괴되면서 전선에 커다란 구멍에 발생하였다.

 

임진강(설마리) 전투를 소개한 Last Round

 

만일 이 상태에서 경춘가도를 따라 중공군이 계속 남하한다면 서울의 안전도 장담할 형편이 아니었다. 서부전선에서 막힌 중공군의 공세가 엉뚱한 곳에서 성공할 수도 있는 위기였다. 바로 이때 이들을 막기 위해 등장한 부대가 영연방 27여단이었다. 영국군 제27여단을 기간으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병사들이 증강 된 27여단은 1951423일 가평에서 무려 5배가 넘는 중공군을 물리치는 기적을 연출하였다.

 

가평전투 당시 참호를 보강하는 캐나다군

 

이로써 야심만만했던 중공군의 5차 공세는 비참하게 좌절되었다. 결론적으로 서부전선의 설마리에서 영국 29여단이 당한 불가항력적인 패배를 가평에서 영연방 27여단이 몇 갑절로 즉시 중공군에게 돌려준 셈이었다. 한마디로 중공군 5차 공세의 시작과 끝을 영국 및 영연방군이 담당한 것과 다름없었다. 때문에 설마리와 가평은 이 전투에 참여하였던 영연방 각국의 부대들에게는 전설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2011년 가평에서 벌어진 기념 행사에 참석한 길라드 호주 총리와 참전 용사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당시 소부대 지원용 화기로 영국(연방)군과 중공군이 같은 경기관총을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1926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브르노(Brno)사에서 만든 ZB vz.26(이하 ZB-26) 경기관총은 여러 후속 경기관총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희대의 걸작이었다. 탄생 직후부터 여러 나라에 수출되었는데 중일전쟁을 치르던 중국은 3만 정이나 수입한 ZB-26의 최대 사용국이었다.

 

대공사격을 하는 중공군이 사용 중인 ZB-26

 

하지만 ZB-26가 진정으로 꽃을 피운 곳은 영국이었다. 303브리티시 탄을 쓸 수 있게 개량된 ZB-261930년 영국군의 경기관총으로 당당히 채택되었는데 그것이 1980년대까지 영국군의 주력 분대 화기로 활약한 브렌(Bren)이다. 그런데 2차 대전 당시에 브렌이 당시 연합국의 일원이던 중국에도 공급되었다. 이 때문에 중국이 공산화된 후 ZB-26, 99(일본이 카피한 ZB-26) 그리고 브렌이 중공군의 주력 경기관총이 되어 버렸다.

 

오래 동안 영국군의 제식 화기였던 브렌 경기관총

 

그렇다보니 6.25전쟁 내내 같은 경기관총을 보유한 영연방군과 중공군이 교전을 벌이는 경우가 흔했고 그 정점이 바로 중공군의 5차 공세였다. 물론 이런 모습이 5차 공세 당시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쟁 내내 해당되었던 사실이지만, 영국군과 중공군이 가장 격렬하게 충돌하였던 전장에서 중요하게 사용하였던 전투 수단이 같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우리에게는 가슴 아픈 과거지만 무기사적으로 흥미로웠던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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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anghoseo 2013.04.10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브렌은 돌격소총 개념이 없던 시절, 미군제식에 BAR가 있던 때부터, 영국군에게 분대지원화기로 쓰이던 경기관총이라고 볼 수 있죠.
    지금이야 너도 나도 이런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상황이긴 합니다만...
    미군이 M60을 거쳐 M249까지 오는 와중에도 계속 쓰였다는 점이 놀랍죠. 포클랜드 전쟁 때도 들고 갔으니까요.
    지금 쓰이는 M2HB만큼 장수한 총기 중 하나입니다.

    사실상 303브리티시 탄과 같은 7.7×58mm 아리사카탄을 쓰는 99식 경기관총이 키지로 남부가 만들어 낸 카피캣이긴 한데 총검까지 장착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긴 합니다.
    당시 일본 육해군 제식화기에 쓰인 탄들이 모두 제각각이라 보급에 차질을 빚고 결국 패전에 일조를 한게 사실인데요.
    그나마 일본제식 중 몇 안되는 걸작 중 하나입니다. 미군이 가장 두려워하기도 했고요.

    예전에 M60으로 총검술을 시키는 '얼차려'가 있더랬습니다.
    무려 10kg이 넘는 총기를 들고 반자이 돌격을 한다는게 얼핏 상상이 안가죠.
    실제로는 총검이 거의 쓰이진 않았다라든지 총검장착으로 밸런스가 맞아 명중률이 더 높았졌다라든지 반론이 있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