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은 10년을 복역하고 가족들의 탄원에 힘입어 가석방되었다. 집에 돌아온 그는 2년간 자신의 특허를 계속 발전시켜 완성한 뒤 국방성을 찾아갔다. 그리고 무기 개발 담당을 만나 일자리를 요청하였고 그가 처음으로 얻은 계약은 브라우닝 자동소총[BAR]을 작은 22구경(口徑) 연습탄을 발사할 수 있도록 실탄 전환 키트[kit]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국방성에서 이것을 주문했던 이유는 실탄 사격 연습 때 비싼 30 구경탄이 아니라 저렴한 22 구경탄을 사용하여 경비 절감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만년의 데이비드 M 윌리엄

 

이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평가되었고 윌리엄이 다음에 했던 것은 22구경탄으로도 45구경 권총으로 작동 할 수 있는 키트의 개발이었는데 그는 이 프로젝트 역시 성공시켰다. 월리엄의 재능을 알아본 국방성의 병기 국장 쥬리안 햇처 장군은 1938년 그를 윈체스터사에 소개하였다.

 

칼빈총은 해군이나 공군 그리고 육군의 포병이나 수송, 병참 등 에서 무겁고 큰 소총이 아닌 작고 가벼운 소총의 수요 제기에 따라 1938년 미 국방성 보병국장이 병기국장에게 칼빈 소총의 개발을 요청하였다. (부언하자면 칼빈[CARBINE]이라는 명칭은 프랑스어 carabine에서 전래 된 것으로 고유 명사가 아니라 기병총같이 짧고 가벼운 총기를 뜻한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병기국에서 손을 대지 못하다가 1940년도에야 정식 프로젝트로 채택되고 민간 총기업자들에게 개발 공고가 나갔다칼빈에 대한 기본 개발 조건은 구경은 30구경이어야 하나 탄피가 휠씬 작아 경량 총기로 발사될 수 있어야 하고 무게는 기존 톰슨 기관단총의 절반 수준에 총신의 길이는 18인치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윈체스터는 사실 처음에 칼빈 총 개발에 별 관심이 없었다. 윈체스터는 그 때 총기 디자인의 천재인 존 브라우닝의 동생드 브라우닝이 디자인한 M2 라이플을 개발 중이었다M1 개런드 라이플의 백업 총으로 개발하던 브라우닝의 M2 라이플은 M1 라이플과 같은 9.5파운드나 되는 큰 무게를 가졌. 구경 또한 M1 라이플과 같은 30구경의 대형탄이었다. 러나 19395월 브라우닝이 그만 작고하고 말았다. (물론, 사후에도 개발은 계속되어 M2 라이플은 1940년 해병대 시험 평가에 제출되었다.)

 

M1 라이플과 카빈

 

그러나 에드 브라우닝이 설계한 볼트(노리쇠)가 먼지나 모래가 들어가면 빈번하게 작동 불량을 일으켜 1940년 해병대 평가에서 지적을 받았다그래서 윈체스터는 브라우닝이 디자인한 노리쇠 디자인은 포기하고 이미 개발 완료된 M1 라이플에서 볼트를 베껴 개발하기로 하였다.

 

윌리엄이 윈체스터에 채용한 것은 브라우닝이 작고하고 두 달 후였다. 윌리엄은 조직 생활을 싫어했지만 자기 특허를 활용할 꿈을 살려보고자 윈체스터사에 입사했다.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발명 특허를 시용해 총기의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윌리엄은 M2 소총에 유동 가스실 구조와 쇼스트로크 방식을 적용하여 원래의 9.5파운드의 무게에서 오늘날 M16 수준인 7.5 파운드 수준으로 경량화하는 개발에 성공하였다그리고 그는 이 프로젝트를 19405월까지 마무리했다윈체스터는 가벼워진 M2 소총을 병기국의 실무 책임자 르네 스터드러 소령에게 보여주었다.

 

스터르러 소령은 한 눈에 윌리엄의 특허가 가진 총기 경량화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그는 윌리엄의 특허를 활용한다면 믿기 힘들정도로 가벼운 4파운드나 4.5 파운드의 칼빈을 개발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스터드러 소령은 윈체스터에게 즉시 이 아이디어를 살려서 칼빈 소총을 개발하도록 요청했다.

 

평가는 9월에 있을 예정이었다. 정식 평가를 위한 시험 시간에 쫓기던 윈체스터는 전 개발팀원달라 붙어 단 13일 만에 M2 라이플을 축소한 칼빈을 만들어냈다시간에 쫓겼지만 기존의 여러 좋은 디자인을 합성해 오늘날 칼빈의 모형(母型)만들었다. 가장 급했던 실탄 개발은 윈체스터가 1905년도에 개발했던 자동총의 32구경탄을 개량해서 쓰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렇게 시간에 쫓겨 만든 총기로써 유명한 총기는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우수했다는 평을 받는 소련의 PPS-43 기관단총이 있다. 전투기로 보면 2차 세계 대전의 최고 걸작기 P- 51 무스탕도 시간에 쫓겨 만든 전투기다.

 

윈체스터 1905 자동총

1905년 윈체스터가 개발해서 판매했던 윈체스터 1905년도 32구경 실탄을 탄피의 아래에 중절모같이 튀어나온 테두리 (단발총이나 레버 액션 총기에서 장전과 추출를 쉽게 하기위해서 이런 것들이 있었지만 자동총이나 볼트 액션 총기에는 튀어 나온 테두리는 필요없다.) 를 없애 오늘날 여러 사람들이 잘 아는 30 칼빈 구경탄이 탄생하였고, 이를 기본 실탄으로 채택했다.

 

완성된 첫번째 윈체스터 칼빈 총을 다시 다듬은 두 번째 작품은 1941년 당시 있었던 평가에서 다른 회사에서 출품한빈 총들을 압도해버렸다. 다음 달에 국방성에서 윈체스터 칼빈을 채택하기로 확정이 되었고 1021일에 M1 칼빈이라는 이름으로 제식화 되었다.

 

1942년부터 중반까지 일선 병력에 지급되기 시작한 칼빈총은 전선의 병사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더불어 주문량도 폭주하였다. 주문량을 윈체스터사가 감당할 없어, GM 계열의 인랜드와 타이프라이터 회사인 언더우드사, 그리고 IBM 까지 여러 기업에 하청을 주어야했다.

 

M1 칼빈 총은 생산 단가가 아주 낮았다. 파트너 격인 M1 소총이 85, 그리고 유명한 톰슨 기관단총은 칼빈보다 다섯 배나 비싼 225 불이나 했다. 1944M1 칼빈총은 한 발 진화하여 완전 자동이 가능한 M2 칼빈을 탄생하게 하였다.(M2 칼빈은 다음 전쟁인 한국전쟁과 월남전에서 큰 활약을 했다.)

   

M2 carbine - M1 carbine과 다른 점은 총의 기관부 좌측에 자동/반자동 변환 레버가 있는 점이다.

 

2 차 세계 대전중 칼빈은 그 생산량이 650만정이나 되는 M1에 이어 무려 600만정이나 생산되었다윌리엄1950년형 윈체스터 자동 산탄총을 개발한 뒤 윈체스터사를 떠났다. 그리고 그는 1975년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생전에 신청한 특허는 약 50개나 되었다.

 

M1 칼빈 총은 카라시뉘코프가 개발한 AK-47이나 유진 스토너가 디자인한 M-16처럼 한 사람이 개발한 총이 아니다여러명 참여한 윈체스터 팀이 개발한 것이었고 그만큼 대여섯 사람의 아이디어와 기존의 좋은 디자인들이 합성된 총이다.

 

1952년 당시의 명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주연한 칼빈 윌리엄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윌리엄의 특허가 핵심이라서 그가 칼빈총의 대부라는 타이틀이 나돌고 언론에도 소개되었다그 일화가 유명해져서 1952년 당시의 명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주연한 칼빈 윌리엄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이 영화는 상당히 픽션화되어서 윌리엄이 교도소에서 복역할 때 칼빈 총을 개발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사실과 많이 다르다. (나도 몇 년전 한국 TV에 소개된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칼빈 소총은 오래 전에 미군에서 은퇴했지만 그 인기는 군에서 민간인으로 옮겨와 현재도 미국 중고 군용 총기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1960년도부터 그 인기를 타고 서너 민간인 회사가 칼빈 총을 생산하기도 하였는2000년대에 들어와 가장 늦게 칼빈 소총 제조에 뛰어든 회사는 톰슨 기관단총을 만들던 오토 오드난스사와 우찌 기관단총과 가릴 소총을 만든 이스라엘의 IMI사가 있다.

 

여러 국가가 현재도 칼빈총을 사용하고 있는데 한국도 경찰과 예비군에 지급하는 무기가 칼빈총으로 우리나라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 칼빈 사용 대국으로 여전히 칼빈총 대국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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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피박 2013.01.08 0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방을 운영 하시는 울프 독님 그리고 여러 독자님들 새해 건강 하시고 가내에 어마어마한 행복이 덩쿨채 들어 오시길 진심으로 기원 합니다. 미국의 교도소에선 이런 총기도 탄생 했지만 패션도 탄생을 했답니다. 90년대 대한민국을 강타 했던 서태지와 아이들 중에 주논가 하는 가수가 있었는데 그의 패션은 항상 커다란 상의와 몸에 맞지 않는 바지를 엉덩이 밑에쯤에 걸치고 입지도 벗지도 않는 기괴한 모양의 패션으로 대중 앞에 서곤 했었는데 그게 바로 미국교도소에서 나온 패션 이랍니다. 미국 교도소엔 별별 기괴한 죄를 짓고 수감 생활을 해야 하는 별 희한한 사람들이 다 있는데 어떤 한국 사람은 말싸움 끝에 상대에게 그러면 너 죽어 그말 한마디 했다고 살인미수 라는 죄목으로 수감을 해야 하는 참 가슴 아픈 사연도 전해 지는게 이곳의 가막소 이야기네요

  2. 피박 2013.01.08 0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여간에 수감 생활을 시작 하면 교도소에서 주는 수감옷을 입어야 하는데 어디 그많은 수감자들에게 몸에 맞는 옷을 주기란 불가능한 일 그래서 많은 수감자들이 어떤 사람은 작은 거 어떤 사람은 큰 거 이렇게 옷을 입는데 그 수감자들 중엔 돈이 많은 사람들이 수감 생활을 했는데 그들 대부분은 마약사범 바로 마약 장사를 하면 진짜 많은 돈을 버는 게 이곳의 사회인데 바로 이 마약 장수들이 마약을 팔다가 그게 들통나 가막소에 들어 왔고 그들에게 지급된 옷이 커다란 옷이었는데 몇년씩 수감 생활을 하다 보니 헐렁한 옷에 익숙해 버렸고 나중에 석방 되어서도 헐렁함에 익숙해진 그들은 헐렁한 옷을 계속 입었고 역시 마약 장사는 계속 되었고 마약을 팔다 보니 돈이 많았고 돈이 많다 보니 좋은 차에 씀씀이도 좋았고 돈많은 남자들이었기에 주변엔 예쁘고 날씬한 여자들이 많았고 멀쩡한 세상 사람들 생각에도 아 헐렁한 옷입은 사람들은 여자들한테 인끼가 많구나 그래서 마약 장사도 아닌 사람들도 너도나도 헐렁한 옷을 입게 되었고 그게 유행이 되었고 그 유행은 한국에도 상륙 주노는 물색없이 그렇게 옷입고 대중앞에 나타나 몸을 흔들었다는 우습지만 왠지 서글픈 생각도 드는 미국교도소의 죄수복장 이야길 한 번 써 보았습니다

  3. janghoseo 2013.01.08 0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해를 맞이하여 가정에 화목과 행복이 충만하고 뜻하시는 모든 일에 발전과 번창이 있기를 마음 깊이 기원합니다. 울프 독님.
    얼마 전 'Devil's Brigade'란 1968년도 클래식 영화를 보는데 이탈리아에서 첫 번째 미션에 여단 구성원 거의 전윈이 그 비싼 M1928A1 톰슨으로 무장했더군요. 제작 당시도 만만찮은 가격이였을텐데.. 헐리우드 영화답단 생각을 가져봤습니다. 하하.

    독소전 당시 튼튼하고 조작이 단순한데다가, 값싼 제작비에... 고도의 훈련이 필요없다는 이유로 어떤 소대의 경우 소대원 전원이 분대지원화기급인 PPSh41으로 무장했었다란 글도 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이 군수지원을 늘리기 전 생산물량이 한참 쪼달릴 때 심지어 모신나강 소총의 총열을 반으로 잘라 PPSh41 총열에 제작했다는 말도 있더군요.
    PPS-43은 같은 토카레프 탄을 쓰는 PPSh-41 보단 연사력과 장탄수에선 뒤지지만, 위력과 정확도가 다소 앞서서 인정받은 총기죠. 그래도 9밀리 파라블럼탄을 사용하는 다른 서브머신건 처럼 'Spray & Pray'에선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까요.
    아 참. 7.62×25밀리 토카레프 탄은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러시아 등지에서 수입되고 있습니다.

  4. Favicon of http://blog.daum.net/bulba 황태 2013.01.08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박님. 오랜만입니다.
    야후 블로그가 이모양이 된 후로 이리저리 떠돌아 댕겼는데....
    결국 울프독님 글에서 다시 만나게 되네요 ㅎㅎ

    저도 영화 카빈총 이야기를 십수년쯤 전에 본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흑백이었던거 같았는데... TV가 흑백이어서인지 영화자체가 흑백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데이빗 마셜 윌리엄즈라는 사람이 밀주(탈세)로 세관원을 총격전중에 사살해서 감옥에 갖혔는데 그 기서 개발한게 카빈소총이다..
    그래서 카빈소총이 개런드 보다 상당히 일찍 나온줄 알았는데 2차대전 초창기에도 스프링필드 1903과 토미건만 보이고 이게 안보이더라고요.
    그러다가 중반부터 공수부대용 카빈이 등장하고... 일반부대에서도 보여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 영화에서처럼 감옥에서 개발된게 아니라 감옥에서는 특허가 나왔고 2차대전 중에 실물이 제작되어 보급되게 된게 맞네요.
    픽션이란게 일부는 맞고 일부는 안맞는게 다 이런 류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울프독님도 올 한해 알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5. 피박 2013.01.08 1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황태님 야후에서 처음 뵈었던 그래서 가끔씩 글도 올리셨던 그 황태님을 다시 뵙게 돼서 넘 반갑 습니다 사실 지난 번 울프님의 글에서 다시금 뵈었었는데 그땐 인사도 못 올리고 이제야 인사를 올립니다 아무쪼록 가내 평안 하시고요 울프님의 좋은 글에 황태님의 좋은 댓글도 기대를 하옵니다 저도 글을 좀 잘 써보고 싶은데 글을 써놓고 보면 꼭 이빨빠진 옥수수 처럼 두서가 없네요 흑 ~~~
    올해는 저의 바램이 하나 있네요 꿈에도 그리는 한국 방문을 함 해보고 싶은데 그게 될까 ? 하지민 될거라는 신념으로 새해를 맞이했고 뜨는 새해의 첫 번째 해가 왠지 예사롭지가 않는게 올해는 어쩌면 한국 방문이 성사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여 그렇다면 서울의 어느 장소에서 쐬줏잔 기울이는 장소도 함 마련해 봄이 어쩔지요 ㅎㅎㅎ

  6. Favicon of http://blog.daum.net/bulba 황태 2013.01.10 1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피박님 반갑습니다...ㅎㅎ
    저는 그때부터 다음 블로그에 위와같이 둥지를 틀었습니다..
    닉을 클릭하시면 블로그로 연결될것 같습니다.
    들어오시면 기별 한번 주십시오

  7. 울프 독 2013.01.10 2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박님 황태님 janghoseo님 옛 야후 가족들이 둘러앉으니 블로그 황금시절인 2007-8년생각이
    나는군요. 다들 안녕히 지내시죠. 저는 네이버에 간판만 붙여놓았는데 아직 엄두가 안나서 그냥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 백두산 2013.01.11 2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십니까? 야후시설 울프독님 블러그을 우연히 알게되어서 애독하던 독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현재 이사간 블러그 주소를 알고싶어서 이렇게 글을 남김니다...이사가기전 공지로 이사간 블러그을 즐겨찾기를 해놓았는데 실수로 지워버리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ㅠㅠ

  8. Favicon of http://blog.daum.net/bulba 황태 2013.01.11 15: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깝습니다... 울프독님
    그 좋던 시절이...어찌 이렇게나 썰렁하게 되어버렸는지.
    피박님이 올해 들어오신다는데 그때 시간 내서 서울에서 조촐하게 미팅이나 한번 하는게 좋겠습니다.
    연락책은 제가 하지요.
    연락 필요하시면 제 아이디를 눌러 블로그에 오셔서 비밀글로 남겨 주시면 되겠습니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