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공수작전[3]   

 

 

 

- 정예중에 정예 -

 

 

하늘을 통한 크레타 침공의 선봉은 루프트바페(Luftwaffe)를 상징하던 Me-109 메셔슈미트도, 공중 포대였던 Ju-87 슈투카도 아니었다. 그것은 독일 공군의 또 하나 자랑인 팔슈름야거(Fallschirmjager)였다. 세계 최초로 실전에 투입된 공수부대라는 빛나는 영예를 가지고 있던 팔슈름야거는 최고의 부대라고 스스로 자평하고 있던 정예중에 정예였다.

 

이제는 전설이 된 팔슈름야거

 

항공기의 발달이후 하늘을 통하여 전선 배후를 급습하는 공중강습에 대한 이론을 생각한 것은 사실 독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의외지만 최초로 공수부대를 육성한 나라는 이탈리아로 알려진다.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처음으로 항공기가 전선에 투입 된 20세기 초 이탈리아에 초보적인 형태의 공수부대가 있었다.

 

하지만 1~2명의 병력을 시험 삼아 전선 배후에 투입하는 정도여서 그다지 의미 있는 성과를 보이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실 1920년 이전에는 분대 정도 규모의 사람이 탈 수 있는 비행기도 없었고 그렇다보니 하늘을 통한 부대 단위의 공수를 생각한다는것 자체가 어려워 많은 나라들은 이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창설 초기 소련군 공수부대의 모습

1930년대 들어 항공 산업이 발전하고 많은 사람들을 운반할 수 있게 되면서 상황은 서서히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대규모의 공수를 최초로 실현한 나라는 소련이었다. 소련은 1932년 세계 최초로 공수여단을 만들었고 1935년에는 키에프에서 6천명의 대규모 병력이 집단 강하하는 인상적인 시범을 선보였다.

 

소련군은 저속으로 비행하는 수송기의 문을 열고 주익까지 기어 나와서 강하하는 방식을 선보였는데,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상당히 위험한 방법이었다. 비행기가 대공포에 피격될 위험이 컸고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비행기 외부에 오랫동안 노출되어야 할 강하병들이 사고를 당할 위험이 너무 컸다.

 

1935년 키에프에서 시현 된 소련군의 대규모 공수강하 시범

 

하지만 이런 부족함은 참고하여야 할 것이 전무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실 오늘날 강하 기법은 이런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며 정착된 것이다. 이 강하 시범에는 세계 각국의 많은 관계자들이 초청을 받아 참관하였는데, 독일군을 대표하여 참석한 이가 슈트덴트(Kurt Student)였다.

 

비록 어수룩하고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그는 소련군의 집단강하 시범에 강렬한 인상을 넘어 새로운 전쟁기법을 발견하는 감동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독일로 귀환한 슈트덴트는 곧바로 공수부대의 필요성을 군부에 역설하여 팔슈름야거 창설의 주인공이 되었고 전쟁말기까지 그가 창설한 부대를 진두지휘 하였다.

 

팔슈름야거 창설의 주역 슈트덴트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지만 적의 배후로 강하하여 작전을 펼치거나 거점을 미리 장악하여 아군 주력이 도착할 때까지 현지를 고수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공수부대는 일당백의 뛰어난 전투력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평시에 상상을 뛰어넘는 훈련 과정을 거친 공수부대는 정예라는 자부심이 강하며 팔슈름야거 또한 마찬가지였다.

 

특히 1940년 벨기에의 에방에말(Eben-Emael) 요새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킨 작전은 팔슈름야거의 전투력을 입증한 사례였다. 프랑스 침공 당시에 독일 전격전의 최대 장애물로 평가되던 요새를 제압하면서 독일군 주력의 진격통로를 확보하였던 당시 작전은 정예화 된 공수부대의 필요 이유를 전 세계에 각인시켜 주었을 정도였다.

 

에방에말요새 공략 당시와 작전 후 히틀러의 치하를 받는 모습

 

이렇게 정예라는 자부심이 가득차고 찬란한 전과를 올렸던 독일의 독수리 팔슈름야거가 크레타 침공의 선봉으로 예정 되었다. 그런데 막상 공중 강습을 통한 크레타 침공을 계획하였지만 크레타에 방어막을 형성하고 있는 2만여 영국군을 일거에 소탕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그 누구도 실시해 본적이 없던 대규모 작전이 요구되었다.

 

적어도 섬에 주둔하고 있는 연합군과 대등한 규모의 병력을 일거에 집중 투입하여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도의 대규모 병력을 공중 강습으로 투하하였던 경험은 당시까지 독일은 물론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없었다는 점이다. 사실 현재도 사단 급 정도의 병력과 장비를 일거에 공수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나 러시아 정도뿐이다.

 

현재도 사단 급 부대를 공수 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아무도 해보지 못하고 그렇다보니 선례도 없으며 참조할 것이 전혀 없는 거대한 공수작전을 독일은 벌여야 했다. 아무리 끓어 넘치는 자부심에 충만한 상태였지만 용기만 가지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크레타는 군 역사에 있어 새로운 시험장이 되려고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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