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전보를 알리려고 달려간 용사 [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마라톤 전투는 역사적 의의를 제외하고 보면 군사적으로 그다지 많은 의의를 부여할 만큼 특출 난 전투는 아니었다. 하지만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가 아테네까지 단숨에 달려가 노심초사하던 시민들에게 승리의 소식을 전한 후 사망했다는 고사는 마라톤 전투를 하나의 전설로 만들어 버렸다.

 

페이디피데스의 동상페이디피데스의 동상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된 14세기 이후는 고대 그리스에 대한 향수가 컸던 시기로 특히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런 경향이 컸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문명이 꽃을 피웠던 발칸반도, 소아시아는 15세기에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고 오토만투르크에 정복당한 이후 19세기 말까지 이슬람 세력권이어서 기독교 유럽인들이 접근하기 힘들었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큰 편이다. 이처럼 가까이하기 힘들다는 제약은 역설적으로 헬레니즘의 원류에 대한 갈망을 증폭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하였다. 19세기 말 탄생한 종합경기대회가 올림픽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시대사적 흐름이기도 했다. 만일 중세에 종합경기대회가 생겼다면 올림픽이라는 단어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19세기말 크레타 유적지를 발굴하는 모습19세기말 크레타 유적지를 발굴하는 모습

 

또한 당시에도 크로스컨트리 같은 장거리 경기가 존재하였는데 굳이 마라톤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종목을 만든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페이디피데스 고사에 감명을 받은 프랑스 언어학자 미셸 브레알(Michel Bréal)이 근대 올림픽 부활의 주역인 쿠베르탱에게 이를 올림픽 종목으로 만들 것을 건의하면서 탄생하였다.

 

한마디로 동양 문명의 도전을 일선에서 막아낸 고대 그리스 문명에 대한 동경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그만큼 19세기에 이르러 서구는 세계를 자신의 뜻대로 선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옛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탄생한 마라톤은 역사가 겨우 한 세기를 갓 넘겼기 때문에 고대부터 있었던 권투나 레슬링 같은 종목에 비한다면 명함도 내밀기 힘들 정도다.

 

고대 올림픽 경기의 모습고대 올림픽 경기의 모습

 

하지만 마라톤은 올림픽을 상징하는 종목이자 전 세계인들이 가장 즐기는 경기가 되었다. 그런데 암구호처럼 되어버린 42.195킬로미터의 마라톤 코스는 사실 페이디피데스가 달렸다는 코스를 정확히 측정해서 나온 거리가 아니다.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마라톤이 처음 선보였을 때는 약 41킬로미터였고 이후의 대회들도 정확한 규정이 없이 대략 40여 킬로미터 내외에서 경기가 벌어졌다.

 

1908년 제4회 런던 대회도 원래 40킬로미터 코스였는데 출발지가 윈저(Windsor)성 부근이었다. 이때 영국 왕실이 출발 광경을 직접 보고 싶다고 요청하여 출발지를 성 동쪽 베란다 부근으로 이동하면서 길이가 42.195킬로미터가 되었고 19247회 대회부터 이를 공식화했다. 그런데 이처럼 옛이야기를 근거로 탄생한 마라톤은 우리에게 스포츠 이상의 의미가 있다.

 

42.195km가 처음 시작된 1908년 런던 올림픽 마라톤 출발 장면42.195km가 처음 시작된 1908년 런던 올림픽 마라톤 출발 장면

 

193689, 베를린 올림픽 주경기장 서쪽 문으로 한 명의 젊은이가 뛰어 들어왔고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내었다. 11회 올림픽의 마라톤 승자가 결정되려는 순간이었다. 선수는 열화와 같은 관중의 성원을 등에 업고 2시간 2919.2초라는 올림픽 신기록으로 제일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였는데, 그 선수가 바로 대한민국의 손기정(孫基禎)이었다.

 

비록 일장기를 달고 나라 잃은 설움을 곱씹으며 일군 우승이었지만 그의 승리는 모든 한국인들을 환희에 들뜨게 만들었다. 모든 종목을 통틀어 한민족이 모든 세계인과 겨루어 이룬 최초의 우승이었다. 하지만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승리는 단지 스포츠 분야에서의 업적만이 아니었다.

 

1936년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사건1936년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사건

 

손기정의 우승은 일제의 탄압과 수탈로 실의에 빠져 있던 식민지 한국인들에게 우리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으며 결코 2류 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시켜 주는 기폭제가 되었다. 지금은 많이 감소하였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오랫동안 마라톤은 한국인들에게 단순히 스포츠를 넘는 거대한 아이콘이 되었다.

 

이처럼 단지 지명이나 과거의 역사만 놓고 본다면 전혀 관련이 없지만 마라톤은 우리에게는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의미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마라톤은 세계사적으로 더욱 의의가 있는 단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알아 본 것처럼 원래 마라톤은 2,500년 전, 동서양의 대표 세력이 격정적으로 충돌하면서 역사의 흐름을 결정한 중요한 공간의 이름이었다.

 

마라톤 전투의 잔영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마라톤 전투의 잔영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하지만 그러했던 과거사를 아는 이들은 이제 그리 많지 않고 지금은 하나의 스포츠 종목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후예인 이란이 현재 마라톤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만 생각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 그들에게는 2,500년 전의 패배가 아직까지 기억되는 굴욕이기 때문이다. (승전보를 알리려고 달려간 용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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