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고려 영웅, 낭장 문대(文大)의 죽음 -제1편-

 


오늘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몇자 써본다.

한국 전사[戰史]를 들여다 보면 아쉬움의 한숨을
쉴 때가 자주 있다.

동족을 침략한 김 일성 무리와 싸우다가 들과 산에서
호국의 별로 사라진 무명의 영웅들이 정말 너무도 많지만, 현대의 한국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이들의 공적을 찾고 기리는 민족적이고 조직적인 노력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 분들은 이렇게 잊혀져 가는 것일까?

정말 우리나라는 영웅 모시기에 이처럼 소홀해도 되겠는지...

아쉽기만 하다.


우리 민족의 영웅 모시기를 일본의 그 것과 비교해 볼 전사가 있는데, 영웅 모시기에 한일 양국이 확실히 다른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조적인 영웅 두 명을 비교해 소개해 본다.

그들이 보여준 감동스런 투혼은 차이가 없지만 양국에서 후세에
전해져 기려지는 정도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일본 내전에서 싸운 전쟁 영웅은 대대로 추앙되어 그의 이름을 따서 작명한 기차역까지도 생겼지만 세계 최강 몽골군에 맞서 장렬히 전사했던 한국의 한 영웅은 고려사라는 역사서에 단 몇 줄로서 간신히 숨결을 남기고 있을 따름이다.


먼저 일본 민족이 모시는 영웅을 보자.

시공을 훌쩍 건너 뛰어 한참 전인 1,500년대 전국 시대의 일본으로 가보자.
1,575년 가히의 영주 다케다 가쓰요리는 3만 병력을 일으켜 인접 도쿠가와 영지로 쳐들어 가서 도쿠가와 영내의 나가시노 성을 포위했다.

성의 성주는 도쿠가와의 사위였던
오쿠다히라 사다마사였는데 단지 500명의 부하만 데리고 성을 지키고 있었다.

 

 

   나가시노 성- 아래 소개하는 스네에몬은 이 강을 타고 탈출하여 오다와 도쿠카와 연합군에게 갔다.


가쓰요리는 나가시노 성의 미약한 군세를 깔보고 성을 금방 함락 시킬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지세를 기묘하게 이용해서 만든 성은 공격하기에 워낙 안 좋았고 오쿠다히라 사다마사의 지휘가 출중해서 좀처럼 함락시킬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나가시노 성 부대의 형편이 느긋한 것도 아니었는데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원군(援軍)이 좀처럼 달려 와주지 않는 것이었다.

이 때 오다 노부나가는 차제에 다케다 군을 쓸어버릴
비책을 짜고 필요한 철포(조총)를 긁어 모으고 부대를 훈련시키느라 원군을 파견하는 시간이 지체되었던 것이다.

기진맥진한 성주 오쿠다히라 사다마사는 부하 중에서 성실한 도리이 스네에몬(鳥居 强右衛門)을 밀사로 뽑아 도쿠가와에게 파견했다. 심야에 성에서 나와 강을 따라 헤엄쳐 올라간 도리이 스네에몬은 다케다 군의 포위망을 뚫고 오다와 도쿠가와에게 가는 밀사 임무를 완수해 성공했다.

오다와 도쿠가와는 신속한 지원군의 출동을 약속했다. 하지만 
스네에몬은 이 좋은 소식을 가지고 성으로 돌아오다가 다케다 군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었는데, 그를 심문한 다케다의 중신 아나야마 겐바노가미는 그에게 '살려 줄테니 성의 방어군에게 오다와 도쿠가와의 부대가 구원군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거짓말을 하라는 제안을 했다.

아래는 그의 남자다운 최후를 묘사하는 야마오카 쇼하치의
소설 도쿠카와 이에야스의 한 대목을 빌려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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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에몬은 선선히 응락했다.

“그러지요.” 

꽁꽁 묶인 스네에몬은 가까운 본성의 망루가
잘 보이는 앞 바위 위로 끌려갔다. 스네에몬은 시키는대로 성을 향하여 외쳤다. 

“성안에 있는 분들에게 말합니다!”

바위 위에 오른 스네에몬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리이 스네에몬, 성으로 돌아가려다 이렇게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전혀 후회는 없습니다. 오다 도쿠가와 두 대장님은...”

일단 말을 끊었다.

“이미 4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오카자키를 출발하셨습니다. 이삼일 안으로 반드시 운이 트일 것입니다. 성을 굳건히 지켜주십시오!"

“ 와아 !"

성안에서 함성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다케다 군 졸병 두 명이
바위에 뛰어 올라 스네에몬을 끌어내어 사정없이 구타했다.

-그리고 중간은 생략 -
 

스네에몬에게 놀림을 당해서 분노할대로 분노한 가쓰요리는 그를
 처형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스네에몬은 십자가에 묶이고 손에 못이 밖혀서 성을 바라보는 바위 위에 높이 세워졌다.

구타로 정신을 잃은 스네에몬이 정신을 차리려 했을 때
두 겨드랑이 밑에서 창끝이 교차하여 양 어깨를 뚫고 나갔다.

“으으으...”

스네에몬 시야가 갑자기 어두워지고 귀에서 소리가 울렸다.
그런 가운데서 누군가가 열심히 무언가를 말했다. 

“도리이님! 도리이님이야말로 참다운 무사, 그
 충성을 본받기 위해 최후의 모습을 그려 기치로 삼으려 하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다케다 군의 가신 오치아이 사헤이치(落合 左平次),

"스네에몬님!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스네에몬은 그 말에 웃음으로 답하려 했으나 더 이상
얼굴 표정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상대방 무사는 붓통을 꺼내 종이에 스네에몬의 최후를 그리고 있었다.

장소는 아루미가하라, 사다마사 부대 야마가카 사부로베에의
진지 앞, 이미 대지에는 석양이 시뻘겋게 물든 핏빛을 비추어 반사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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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면 가슴이 뭉클할 만큼 감동이 드는 전쟁의 로망이다.

네에몬 말대로 며칠 뒤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대군을 이끌고 전장에 도착해서 나가시노 성은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다케다군은 밀어닥친 오다와 도쿠가와의 대군과 나가시노 전장에서 전투를 벌였다.

역사의 큰 기록으로 남는 대전투였으며 다케다 군은 오다의 철포(조총) 부대
3,000명의 연속사격으로 궤멸적인 대패를 당한다. 전쟁 좋아하던 가쓰요리는 그후 전쟁에서 패해 자결로 일생을 마감하고 다케다 가문의 가히는 멸망한다.

 

  

                                       나가시노 전투
오다군의 철포대[조총 부대]에 의해서 다케다군은
거의 전멸, 가쓰요리는 단지 대여섯명의 가신들과 함께 전장을 빠져 나갔다.


스네이몬의 주군과 동료들을 위한 신의는 잊혀지지를 않아 그의
아들들은 대대로 오쿠다이라 가문의 중신이 되었다.


60년대‘소설 도쿠카와 이에야스’의 대 히트 이전부터 이 일화는
일본 역사에서 이미 잘 알려진 감동의 전쟁 스토리였다. 

십자가에 묶여 죽은 스네에몬을 그린 오치아이 사헤이치는 그 그림을 자기의 전투 깃발에 새겨 넣어 사용하였는데 이 깃발은 지금도 일본 후쿠오카 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도쿠가와 막부시대 스네에몬의 죽음은 사무라이들이 즐겨하는
군담(軍談)의 주요 화제 중 하나였고 현대에 들어서도 그에 대한 사랑은 식지를 않아 그의 전기가 출판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었다.

또 지금 일본 국영 철도(JR)의 이이다선에는 도리이 스네에몬이라는
역이 있어 그의 충의가 어느 정도 후세 일본인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위의 감동스러운 전쟁 로망의 이야기는 한국사에도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 영웅의 이야기가 일본과 달리 영웅 알아주기에 게으른 후손 때문에 고려사절요라는 책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묻혀있다는 것 뿐이다. 

물론 그 영웅 혼자만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사에서 유일하게 몽골의 침략군을 패퇴시킨 고려의 대몽 항쟁[對蒙 抗爭] 자체가 현대 한국 일반인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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