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5 자유의 투사 공중전기



지금은 그 명예 퇴직의 날들이 보이는 듯한 한국 공군의
F-5, 자유의 투사 [Freedom Fighter] 전투기가 한국 군에 기여한 공헌은 참으로 크다.

 


                                                                   F-5E 기 [제공호]


북한이 제트 전투/폭격기만 500 여 기를 보유하고 있을 때
한국 공군은 제트 전투기를 단 150 여 기 보유하고 있었다. 한참 어려운 그 때, 북한이 남한에 앞서 미그 21기를 도입했다는 뉴스는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1965년 도입된 F-5 기는 남북
비정규전 대결의 시기, 해상에 침투한 북 간첩선을 여러 척 격침시켜 그 우수한 공격 능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F- 5기에는 공중 급유를 할 수가 있었다.
KC-135 급유기와 공중 급유 훈련


80년대 들어와 한국은 미국 제작사인 노스롭 사와 제휴로 보다 개량된 F- 5E 형
전투기[제공호] 66대를 라이센스 생산하여 오늘날 한국 항공 산업 기술의 초석을 다졌다. 뿐만아니라 F-5 기는 대한민군 공군과 민간 항공의 숙련 조종사들을 육성하는 견마(犬馬)의 로(勞)를 다했었다.

F- 5 기는 1952년 한국 전쟁이 한창일 때 미 해군이 다수 보유하고 있었던 소형 항공모함용 함재기로서 설계가 시작되었었다. [그래서 쌍발 전투기인지도 모른다.]

 


              호위 항모 St.Lo. 1
944년  최초의 가미카제 공격에 격침당한 미 해군함이다.


그러나 미
해군이 호위 항공모함 운용을 포기 해버렸기 때문에 좌초 분위기에서 표류하다가 우여곡절을 거쳐 1959년에 시작기(試作機)가 출현했고, 첫 시험 비행에서부터 음속을 돌파하여 항공기 전문가들의 이목을 끌었었다.

F -5 기에게 행운도 찾아왔다.
우방국에게 지원할 저가에 정비도 쉽고 조종도 쉬운 전투기를 찾던 미국 정부가 F -5 기를 채택하여 전 세계 수 십 개 국가에 퍼지게 된 것인데 군사 외교 정책에 의해서 세계 각국으로 공급되었지만 그 우수한 성능 덕분에 미 국내 생산보다 해외 생산이 더 많은 기현상을 빚기도 했다.

[유럽의 노르웨이나 스위스 또는 스페인 같은 국가는 물론 아시아의 이란과 필리핀, 남미의 멕시코와 칠레,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케냐 같은 국가들도 운용했었다.]


F- 5 기의 세계 항공 역사상 숨겨진 기여도로서 주목할 사실이 있는데,
현재 미 해군이 운용하고 있는 F- 18 호넷기의 전신인 노스롭사의 YF- 17기에 F- 5 기의 설계가 크게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YF -17기는 F-5 기와 같은 쌍발기로서 미 공군의 차기 전투기로 F-16과 대결을 벌였다가 패배했다. 그러나 장거리 해상 비행이 많은 해군이 안전도가 높은 쌍발기를 원했었기 때문에 노스롭의 협조를 얻은 맥도넬 더그라스사가 이를 생산했다. 해군기로서의 컨셉을 바탕으로 탄생한 F- 5의 후손이 제 갈 길을 간듯하다.]

 

   미국은 소련의 미그 21과 비슷한 크기와 성능의 F-5 기를 공중전
훈련 가상 적기로 사용했다.


비슷한 시기에 탄생했던 고성능(?) 기였던 F- 104 기가 이미 각국에서 거의 다 은퇴했는데도 불구하고 F-5 기 만은 아직도 건재해서 한국을 비롯하여 여러 국가의 영공을 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전투기의 상대적 우수함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며칠 전 언론에 아프리카 케냐의 국경을 넘나들며
약탈을 일삼는 소말리아 군벌들을 응징하기 위해서 케냐 공군의 낡은 F -5E 기 16대가 출격했다가 그 중 2 기가 추락했다는 기사가 떴었다.

나의 개인
블로그에 F-5 기의 간첩선 격침사를 포스팅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세계 각국에서 아직도 사용 중인 이 전투기가 이스라엘의 프랑스제 미라주 전투기처럼 실전에서 적기를 격추한 전과가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자료를 수집했었지만 글을 쓰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케냐의 F-5E 기가 출격했다는 뉴스를 듣고 이에 대한
생각이 다시 들어 여기에 그 내용을 포스팅해 본다.



                              케냐 공군의 F-5E 기


세계 각국 공군에는 F- 5 기의 공중전 격추 기록들이 여럿있다.

지금은 대표적인 빈국의 반열에 있지만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사이에 오가덴 전쟁[1977-1978]이라 부르는 소규모 영토 전쟁이 있었다. [그 때 소말리아는 지금처럼 군벌들이 군웅할거(群雄割據)하는 시대는 아니었다.]

에티오피아 군은 F-5A 기와 F- 5E 기 두 가지 형을 다 운용했었고
소말리아 군은 미그 21 기를 장비하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공군은 소말리아 서부 지역에 있는 보급 물자 집적소를
폭격하다가 대공 방어 사격에 걸려 세 기나 격추 당하는 피해를 입기도 하였지만 공중전에서는 소말리아 공군보다 더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에티오피아 조종사들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었다.


1977년 7월 17일.

에티오피아 공군 F- 5E 두 기가 소말리아 하레르 지역을 초계 비행을
하다가 소말리아의 미그 21기 네 기가 인근 상공에서 비행 중인 것을 발견하였다. 에티오피아 공군기들은 즉각 공격하였고 더운 아프리카의 상공에서 뜨거운 공중전이 벌어졌다.

이 공중전에서 소말리아 공군기 두 기가 격추 당하고
다른 두 기가 에티오피아 공군의 F- 5E 기가 발사한 공대공 미사일(사이드 와인더)를 급작스럽게 피하다가 공중 충돌하여 추락하였다.



공중전은 아니지만 모로코의 F- 5A 기와 F -5B 기들이
포리사리오 전선과의 전쟁에서 입은 피해는 특기할만하다.

포리사리오 전선은 스페인 식민지였던 서부 사하라의 독립을
목적으로 결성된 무장 독립 조직으로 스페인 철수 후 영토 접수를 노리는 이웃 모리셔스, 모로코와 강력한 무장투쟁을 벌였었다.

사하라 사막의 상공에 출격한 모로코 전투기들은 생각 밖으로
강력한 포리사리오 전선의 대공 방어에 고전을 했었다.

포리사리오 전선은 동독, 쿠바, 그리고 알제리아 군사 고문단의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이들 군사 고문단이 대공 무기를 운용했었다.

대공 무기 중에는 소련제 최신의 SA-6 미사일도 있었다.
수년간 계속 된 전투에서 모로코 군은 14기나되는 F- 5 기들을 잃었다.



타이완은 한국과 같이 F-5E 기를 자체 생산했다.
무려 308기나 되는데 이 라이센스 생산의 F- 5E 기에는 장개석의 호인 중정[中正]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 한국 제공호의 타이완 판이다.

그러나 F-5E 기를 조종하는 타이완의 조종사들이 적기 격추의 맛을 본 것은
타이완이 아니라 먼 아라비아 반도의 북부 예멘에서였다.

1979년 북부와 남부의 예멘 간에 벌어진 분쟁은 미국으로 하여금
신속하게 14기의 F-5E/F 기를 북부 예멘에 원조하게 하였다. 그러나 전황은 다급해 가는데 북부 예멘  공군에는 F-5 기를 조종할 줄 아는 조종사가 한 명도 없었다.

북부 예멘 공군은 단지 구식인 미그 15기만을 조종해봤을 뿐이었다.

북부 예멘을 지원하던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F -5 기 운용경험이 있던
타이완에 조종사 지원을 요청했고, 타이완은 이에 응하여 1979년부터 1990년까지 매년 8명씩의 조종사,총 80명의 조종사를 파견했었다.

타이완 공군은 정비와 기지 방어, 대공포 요원들까지도 지원하였었는데
극비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에서 타이완 공군은 남부 예멘 공군과의 공중전에서 여러 기의 적기를 격추하였다.

반면 소련 조종사가 조종하는 남부 예멘 공군기의 공습으로
타이완이 파견한 레이다 요원과 대공포 조작 요원 등이 사망하기도 했었다. [비밀 작전이어서 였던지 자세한 내용이 알려져 있지않다.]



패망한 남부 월남에 공급 된 F -5A 기. 월남 패망과 함께 일부는 태국으로 망명하기도 했지만 모두 월맹의 소유가 되었다.


F- 5가 가장 눈부신[?] 활약을 한 무대는 1980년에 발발한
이란 이라크 전쟁 때였다.

이란은 미국과 관계가 좋았던 1970년대에 막대한 양의 미제 무기를 도입했었다.
이란이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전투기들로 F-14 기 같은 최신 기종도 있었지만 F- 5E 기도 총 166 기나 도입하였다. 225 기를 도입한 F-4 팬텀과 함께 두 미군 기는 이란 공군의 주력기였던 것이다.

미국과 밀월 관계를 유지하던 이란은 호메이니 혁명 후에
적대 관계로 돌아섰고, 1980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선공으로 이란 이라크 전쟁이 터져  무려 8년간이나 계속되었다.



                         이란 이라크 전쟁에서 잡힌 이라크 군의 처형.


호메이니 집권 후 사이가 틀어진 미국이 부품이나 정비관계의
협력을 모두 끊어버렸지만 이란은
국제 무기 시장에서 부품을 들여오기도 하고 자체 제작도 하여 주력기인 F-5 기들을 전쟁 중에 충분히 가동시켰다.

이란 공군의 F- 5 기는 대지공격에서 대공 전투까지 다목적으로
출격하였으며 이라크 공군기들을 상대로 수 없이 치열한 공중전을 치렀다.

이란 공군의 F-5 기들이 상대한 이라크의 전투기들은 미그 21, 미그 23,
미그 25,수호이 SU-22 등 소련제 전투기들과 미라주 F-1, 슈페르 에땅다르 등의 프랑스제 전투기들이다.

F-5 기들은 이라크 공군 기와 300 여 차례의 치고 받는 공중전을 했지만
이란 측에서 모든 공중전의 정보를 알려주는 상세한 발표가 없었다.

상대국 이라크의 발표는 자기들의 전과만 자랑하는 과장 된 것이어서 이란 F-5 전투기들의 공중전 전모를 알 수가 없다. 여기에 양쪽에 정보의 줄을 대고 있던 러시아나 서방측의 억측도 분분해서 정확한 내용을 판가름하기가 힘들다.

 


                                   스페인 공군의 F-5 기


그렇지만 1983년 8월 6일 F-5E 기를 조종하는 이란 공군 조종사 야도라 자바포우르 소령이 이라크의 미그 25기를 격추 했었고, 이 격추 사실을 계기로 그가 그 외에 5기를 더 격추한 에이스라는 사실이 보도되어 그가 F-5 기의 가장 전과가 많은 탑 에이스 전투 조종사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미국과 적대 관계에 있는 국가에서
미제 무기가 제일 크게 활약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이란은 현재 F-5 기를 역 엔지니어링으로 설계한‘세게크’라는
국산 전투기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이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가 걸프전 때 출격했었던 사례와
월 크메르 전쟁 시 베트남이 패망한 남부 월남이 남긴 F-5 기를 크메르 루즈 침공 때 사용한 출격들이 있었다.
 


     노스롭사의 F-20 기.
엔진이 단발이다.
F-16에 밀려서 해외 판매에 완전 실패하였다.


제작사 노스롭은 F-5 기의 인기에 힘입어 팬텀기와 F-104 기에 사용하는 강력한 GE F-404 엔진을 단발 장비하고 항공 전자 장비를 업그레이드 한 F-20을 개발하여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 판매하려고 했지만 시제기가 하필 한국에서 시연 중 추락하여 불발되고 말았다.

한국의 F-5E 기는 조만간 퇴역할 것이고 아마도 그 뒤를 한국산 T/A-50 기나 F/A-50 기가 
이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국산 전투 항공기 생산 기술의 기초를
제공했다는 의미에서 F-5 기의 이미지는 공군의 현, 전역 항공인들에게 깊은 추억으로 간직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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